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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

꼭지 돌았던 일.

앤_ 2016. 5. 22. 23:06

망알 프로젝트 때문에 너무 바쁘다. 이번주엔 9시 넘어 퇴근한 날이 많았고 토요일에도 9시에 출근해서 6시가 넘어 퇴근했다. 집은 청소가 안되서 엉망진창이고 고양이들은 손길을 그리워해서 놀아주지 않는다고 찡찡거렸다ㅠㅠ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어 씻고 자기에 바빠서 놀아주지 못했다. 어쩌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오는 날이면 허겁지겁 밥을 먹고 멍하니 티비 앞에 앉아 휴대폰을 좀 하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밥도 주로 시켜먹거나 라면, 빵으로 때워야 했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하지만 차리는 것보다, 먹고 나서 치우고 정리하고 설거지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났다. 일때문에 내 일상이 흔들리는 걸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다.

게다가 어제는 토요일이었는데 하루를 풀로 출근해서 일해야 했다. 앞으로 몇 주는 그래야 할 상황이라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나마 오전엔 혼자 사무실에 조용히 있었기에 밀린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오후가 되니 김과장도 사무실로 출근했다. 김과장과는... 여전히 싫은 점이 많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아마 그쪽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이제는 내 업무가 따로 생겼기 때문에 김과장의 업무는 어떻게 되든 관심을 주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그럴 여유도 없고. 대신 나로서는 그 사무실이 해오던 방식들을 배워야 해서 김과장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가 종종 있는데, 김과장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게 성심성의껏 알려주지도 않고 대부분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끝내 문제가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어째뜬 사무실에 사람이 들어오면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쳐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일을 전혀 가르쳐 주지 않으니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답답하고, 본인이 저평가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로서도 이제 3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경비처리 부분이나 올려야 할 서류들에 대한 작성법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텃세라면 텃세인게지.

그건 그렇고, 어제는 정말로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꼭지가 돌아서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할수가 없어 6시에 그냥 자리를 털고 나와야 했다. 그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현장직 일을 하던 분이 있다. 대표나 실장과의 관계가 좋고 맡은 일도 그럭저럭, 아니 잘 하는 편이다. 사무실과 업무적인 일로 연락을 해도 바로바로 연락이 잘 되고 마감도 잘 지키는 편이다. 사실 현장직분들 대부분이 일을 하면서 요행을 부린달까, 아니 실은 일을 거짓으로 해오는 경우가 많다. 업무 성질에 따라 거짓으로 해올 수 있는 성질일때는 100% 거짓으로 수행한다. 이걸 사무실에서도 그냥 눈감아주고 데이타를 서울로 올려보내는데, 서울에서도 거짓으로 했다는 표만 나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1차로 검수를 할 때도 이게 진짜인가를 살피지 않고 '거짓인게 표가 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그 분이 해온 일을 살피다가 너무 표가 많이 나서 전화를 했다. 표가 나면 그 부분만 새로 작업하면 된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이 분이 아니라며 우기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김과장에게도 확인해보라고 하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고 김과장도 살펴보더니 그 분이 해온 4개중에 2개는 표가 많이 나고 나머지 2개는 모르겠다는 거였다. 마침 이 분이 다시 전화가 왔기에 이 얘길 하며 표가 많이 난다고 했더니, 마구 화를 내며 자기가 기분이 나쁘다는 거였다. 순간 내 표정은 정말 ㅡㅡ 였다. 

왜냐면 그 분이 해온 업무는 백프로 거짓이다. 다른 분들도 모두 그렇다. 대신 검수하는 파트만큼은 표가 나지 않게 할 뿐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검수 파트가 본인이 조작을 했던 안했던 검수하는 내 입장에서 그런 의심이 든다면 충분히 전화를 해서 물을 수 있고 내가 확인했을 때 그러하다면 서울로 보냈을 때 누구든 나와 같은 의심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그런 의심을 한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런데 그 분은 마치 자기가 일말의 거짓도 없이 수행해온 것처럼 화를 내고 내가 마침내 더 이상 통화하기도 싫고 짜증이 나서 마음에도 없는 '죄송하다'를 말하자 전화로 '허, 칫 츳' 거리다가 끊는 거였다. 

여기까지는 사실 있을 수 있는 실랑이다. 나도 이 업종에서 2년을, 서울에서 뻔히 지방에서 해오는 거짓 수행 결과물을 보던 사람이다. 현장직분들과 실랑이 한두번쯤 생채기 조금 났다가 기억도 안나게 사라진다. 그런데 꼭지가 돈 건 그 다음이었다.

그 분은 나와 전화를 끊고 김과장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김과장은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한참 전화를 받다가 나왔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으니 김과장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려는 거겠지. 뻔했다. 앉아 있으니 슬슬 화가 치밀어 올라 김과장에게 짜증나서 일이 안되니 집에 가겠다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그 분 엄청 화나셨어."

라고 김과장이 말하는 순간 꼭지가 돌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도 엄청 화났다. 멍청하게 현장직 분들에게 휘둘리는 김과장에게도 짜증이 났다. 작은 사무실이고 현장직분들 구하기도 어렵고 교육하기도 어렵고 그런 환경 뻔히 잘 안다. 그렇다고 내가 내 업무를 하며 당연하게 물어볼 질문에 역으로 화를 내는 사람에게 내가 숙이고 들어가긴 싫었다. 

꾹꾹 화를 참고 집으로 와서 폭식을 하고 저녁에 누워 있는데 또 김과장이 카톡이 왔다. 하.. 진짜 이것 자체가 나를 너무 미치게 만들었다. 김과장은 자기가 다시 살펴보니 4개 중에 하나는 그 분이 조작한 거 같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며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무난하게 잘 지내는게 좋은거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ㅋㅋㅋㅋㅋ 김과장이 원인 제공을 한 건 아니었으나, 말을 바꾼 것도 싫고 내 업무 관련해서 발생한 일에 어린애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싫었다. 정작 업무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가르침도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자기가 나보다 직급이 높으니 내 말을 들으라는 의도로 연락한건가?? 그리고는 '오해하면 안된다'는데, 내가 내 일을 당연히 하는게 오해하는 것인가. 

나도 화가 터져서 의심할만 하니 의심한거고, 조작을 했냐 안했냐 관계없이(웃긴게 어차피 조작인건 서로 뻔히 아는 사실인데) 그런 의심이 들만한걸 그냥 서울로 보내서 사고라도 터지면 그때가서는 그 분이 내 탓 안하겠냐고 나도 쏘아붙였다. 여기선 조사원 구하기가 어렵다고 화해해야 한다고, 화해까지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지내야 한다고 나에게 고나리질을 했다. 사무실에서 이런 식으로 사람구하기가 두려워 지금껏 눈감아주고 현장직 비위 맞추어주니 이 지경으로 왔다는 걸, 나보고도 그걸 따르라는 거겠지. 미안하지만 나는 그 사무실에 아무런 미련도 없고 급여도 너무 적어서 당장 때려치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사정이라 '싫다'고 단칼에 잘랐다. 

하지만 한번 터져나온 화가 식지를 않아 어제 밤부터 오늘까지도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업무로 계속 그 분과 연락해야 할텐데 불편할테고, 나는 내 책임으로 진행될 업무에서 더이상 그 분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대표는 입장이 다르겠지. 대표와 그분 간의 친분관계도 있을테고. 하루동안 화가 나서 괴롭힘 당하고 나니, 아무쪼록 화를 꾹꾹 참고 그 분을 내 업무에서 서서히, 천천히 빠지게 만드는 방법이 나로서는 진정한 앙갚음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사무실을 때려치고 나오면 그 분이 자기가 마치 승리자라도 된 듯 행동할테니. 

아무튼 월요일에 김과장에겐 딱 잘라서 말을 할 생각이다, 알아서 할테니 중간에서 빠지고 앞으로 업무 외적인 부분으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안했으면 좋겠다고. 물론 이걸 완곡하게 둘러 말하는 것에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겠지만... 나도 꼭지가 돌면 뚜껑이 열려 버리는 쪽이라 가능할지 모르겠다. 

사무실이 이모양이다 보니 요즘 들어 서울에서 일하던 사무실이 그립다. 똑똑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게 일을 하는데 얼마나 동기부여가 되고 성취욕구를 자극하는지. 여기는 밥 먹을 때마저도 그냥 혼자 따로 먹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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