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나. 본문

일상의 순간들

나.

앤_ 2017. 3. 29. 14:54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그러니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를 늘어놓지 않을 수 없겠다. 

아빠는 2월 6일 월요일 14시 59분에 별세하셨다. 전날인 일요일 저녁에 병문안 왔던 가족들이 돌아가고 난 뒤부터 아빠는 의식이 없었다. 새벽에 피검사 결과가 아주 나빴기에 주치의 말씀대로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고 가까이 사는 삼촌들은 다시 병원으로 왔다. 어제 만나고 갔던 아빠가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모두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오빠내외가 임종을 지켰으면 좋으련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삼십분 후에 도착했다. 

장례를 치루고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모셨다. 엄마가 49제를 하고 싶어해서 가까운 절에서 49제를 치렀다. 주말에는 시간이 되면 제를 치르러 내려갔는데, 사실은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모든 것들이 그냥 절차로만 느껴졌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이 견디지도 못할 정도로 울기만 하는 엄마가 짜증났다. 나도 아빠를 잃었고 이제는 내 슬픔을 추스리고 싶은데, 사람들이 자꾸 나에게 엄마를 잘 챙겨주라고 말해서 짜증이 났다. 엄마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 앞에서 좀 견디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마지막제는 지난주에 지냈다. 울다가 웃는 사람들을 보면 저들이 정말 슬픈걸까 하는 생각, 아니 의심이 들었다. 마지막에 아빠 옷과 평소에 쓰시던 물건들을 태울 때 아빠에게 자주 놀러오시라고 인사를 했다. 다른 가족들은 한번씩 꿈에서 아빠를 본다는데 나는 아직 한번도 아빠 꿈을 꾼적이 없다. 

종고모님이라는 분이 그랬다. 죽은 이만 불쌍하고 살아 있는 이는 잘 산다고. 그렇다. 나는 아빠가 불쌍하다. 자기 몸이 아픈 줄도 모르고 죽어라 일만 하다가 죽어버린 아빠가 불쌍하다. 눈이 녹고 해가 따뜻해지고 매화, 목련, 동백, 수선화, 벚꽃이 피어나는 이 계절도 누리지 못하고 떠난 아빠가 불쌍하다. 치료를 받고 싶어 했고 살고 싶어 했던, 아픈 걸 알고 난 뒤로 한번도 약을 거르지 않았던 아빠가 불쌍하다. 그래서 같이 살면서 아빠가 아픈 걸 조금 더 빨리 눈치채지 못한 엄마가 아직도 밉다. 

그래도 나는 잘 먹고 잘 지낸다. 빠졌던 살이 다시 찌면서 체중이 더 늘었고 몇주 전에는 남편과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그런데 혼자서 하는 외출은 많이 줄었다. 카페나 백화점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혼자 가는 일이 별로 없다. 어쩌다 들러도 볼일만 보고 금방 나와버린다.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아, 마트는 종종 간다. 그래도 쇼핑을 안하게 되니 지출이 상당히 줄었다. 가계에 도움이 되고 있다.

고양이들은 잘 지낸다. 신경 못써준 것이 미안하다가도 귀찮게 달라붙거나 새벽에 자꾸 울며 깨우는 건 싫다. 쓰고 보니 엄청 귀여운 것 같다. 

운동부족이라 집 앞 하천에 나가서 한바퀴 걷다가 들어오곤 하는데, 한시간 가까이 걸어도 별로 운동은 안되는 것 같다. 느릿느릿 어기적거리며 걸어서 그런가. 하는게 없어도 밤에 잘자고 아침에 일어나기는 여전히 어렵다. 냉장고 청소와 싱크대 청소를 해야 하는데 자꾸 미루고 위급한 것만 처치하고 있다. 작년 겨울에 사둔 뜨개실이 많아서 간단히 덮을 무릎담요를 뜨고 있다. 외출을 잘 안하니 커피는 주로 집에서 내려먹는다. 하루에 딱 한잔만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은 읽어보려고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집중력이 떨어진 것인지 늙은이나 부리는 아집이 생긴 것인지, 읽다가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나오면 그냥 덮어버린다. 그래서 끝을 보는 책이 없다. 계속 방치해서 다 죽어버린 or 죽어가는 화분을 정리했다. 며칠 관심을 주고 물을 주고 분무기를 자주 뿌려주니 살아있는 화분들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분무기로 자주 물을 뿌려주는 것이 좋나보다.

나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부서진 마음이 전체적으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쪽은 완전히 부서져 버렸고 나머지 부분들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 아빠가 차지했던 자리는 아마 영원히 부서진 채로 남을 것이다. 당연히 그러하겠지 싶다. 운동하고 밥을 잘 챙겨먹고 아침에 잘 일어나고 낮잠을 자지 않고 일기를 쓰든 가계부를 쓰든 하루하루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최근의 목표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들어오니 블로그가 칙칙해서 스킨을 바꾸어 보았다. 방치했는데도 불구하고 방문자가 있길래 찾아보니 아빠처럼 아프거나 아픈 가족을 둔 분들이 검색해서 오셨나보다. 아빠에 대한 글은 어떻게든 써서 마무리를 짓고 싶다. 나도 그러했듯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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