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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

서울 가는 중

앤_ 2016. 10. 20. 08:46

서울 가는 중.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이번엔 노트북을 두고 가서 가방이 가볍다. 지난번에 일주일 정도 서울에 머물 때는 노트북을 들고 갔었는데 혼자서 일기 쓸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한번 꺼내어 켜지도 않았다. 먼슬리와 메모 정도만 있는 얇은 노트를 하나 살까 싶기도 하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지난주만 해도 방사선치료 후 부작용이 너무 심하고 기력이 많이 떨어져서 아빠 혼자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정도였다. 사진을 찍으러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월요일에 급하게 진료를 예약하고 새로운 많은 약들을 처방받은 후 상태가 좀 좋아지셔서,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 모두 조금씩 지쳐 있는 상태라 사진 찍으며 기분전환이 되면 좋겠다.

오늘은 미용실을 다녀올 생각이다. 파마도 하고 커트도 하고, 엄마를 모시고 다녀오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아니면 혼자서라도 다녀와야지.

나도 이 서울행에 점점 지쳐가는 모양이다. 어제도 분주히 청소하고 빨래를 했는데, 저녁에 쌓아둔 설거지와 쓰레기를 정리하며 H에게 심하게 짜증을 냈다. 청소를 해놓고 다녀오면 지저분해지고, 집에 와선 내 맘껏 편히 쉬지 못하고 하루이틀 청소와 빨래만 하다가 또 서울에 가야하고 돌아오면 다시 집이 엉망이고.. 아마 이 반복이 짜증나게 한 모양이다. H는 퇴근 후 냥이들 챙겨주기만도 힘든데, 그걸 알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 사정으로 며칠씩 집을 비우면서도 다녀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만 싶은 욕심.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 신경질은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 괜찮다고, 피곤하지 않다고 읊조리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요즘도 악몽을 꾼다. 매일매일에서 이틀에 한번 정도로 줄었다. 피곤해서 꿈을 꾸지 않는 날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보통날의 꿈을 꾸는 건 아니다. 아빠가 아프고 난 뒤, 오빠도 악몽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면 힘들어 한다고 한다. 생각지 못했었는데, 조금 놀랐다.

병원에 있을 때 힘든 점은 병약해진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 간병하느라 지친 엄마의 시중을 드는 것, 두분이 서로 신경질 내는 걸 말리는 것.. 이제부터라도 아빠가 엄마에게 좀 다정하게 해주었으면, 지금부터는 엄마가 아빠의 짜증을 좀 받아줬으면 하는 것. 가족과 있는 것이 늘 피곤하고 어려웠던 나는 요즘 여러가지 생각들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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