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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

151207. 서울을 떠났다

앤_ 2015. 12. 8. 14:56

서울을 떠났다.

서울 방이 나가질 않아서 빈방으로 둔채로 이사를 했다. 집주인은 계약 만기 전까지 방은 비워둔 채로 꼬박꼬박 월세는 받을 생각인가보다. 보증금이 큰데 월세도 더 올려서 방을 내놓아서 아무래도 나가지 않을 것 같다. 혼자 끙끙거리기를 벌써 몇달 하고 나니 나도 지쳐버렸다. 어차피 월세를 만기때까지 물어줘야 하니 그냥 그때가서 집주인이 복비도 내고 알아서 하시라고 나도 그냥 냅둘 생각이다. 

새로 이사온 동네는  광역시에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 곳인데도 매우 시골이다. 이사를 하고 3개월이 넘게 무직으로 보냈기 때문에 이제는 일을 구해야 하는데 집 근처에 걸어 다닐만한 곳은 일자리가 전혀 없다. 기껏해야 대형마트 카운터나 백화점의 판매직 정도. 서울에서 했던 업종은 지금 소강상태라 내년 봄이나 되야 일자리가 나올텐데 그때까지 기다린다고 날 위한 자리가 있다는 보장도 없고, 차라리 직업훈련이라도 받고 앞으로 계속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다. 경력단절 되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9월 처음으로 이사를 왔을 땐 이곳이 너무 싫었고 내 처지가 처량하게만 여겨졌다. 지하철을 내려서 집까지는 10분 남짓 걸어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들어 빙빙 돌아오다 집까지 40분이 걸린 적이 있었다. 어디로 잘못 들었는지 한쪽은 기찻길 담벼락이고 한쪽은 사람도 살지 않는 낡은 주택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두부공장이 있는 골목이었다. 가로등도 없이 공장의 열린 창문으로 뜨거운 열기에 피어오르는 하얀 김과 그 뒤로 얼핏 보이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모습. 

24시간 밤낮없이 밝은 불빛이 있고 1분 거리면 또 다른 편의점이 있고 또 밤새도록 영업하는 카페가 있던 서울. 그 날까지 이질감을 느꼈다면 그 날은 공포를 느꼈다. 이런데서 살해당해도 아무렇지 않겠구나 하는 생명에 대한 공포와, 낯선 장소가 주는 이질감을 넘은 두려움. 전화할 사람도 없고 휴대폰만 손에 쥐고 골목길 끝까지 겨우 뛰다시피 했다. 큰길가로 나오자마자 눈물이 얼마나 흐르는지.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했던 건 성공했다. 하지만 적응에는 시간이 걸린다. 몸도 마음도 이 변화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 면역반응 하듯이. 사실은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틀어박혀 책읽고 자고 게임하고 울다가 일기쓰고 동굴에 갇혀 지내고 싶다. 역시 난 우울하고 소심한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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