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160212. 엄마가 해방되기를. 본문
어제는 창문을 열어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온다. 사람들은 비 온 뒤에 날씨가 다시 추워질거라고 한다.
하루에 두끼를 먹고 간식을 즐기던 생활을 하다가 명절에 계속 세끼를 먹었더니 살이 쪘다. 채식한다고 까다롭게 보일까봐 밥을 더 맛있게 먹는 척하고 밥그릇을 매번 싹싹 비웠더니 그런가보다. 안그래도 결혼하고 나서 생활패턴이 바뀌어 살이 쪘는데 걱정이다. 혼자 지낼 땐 귀찮다고 요거트나 과일로 간단히 먹을때가 많았는데 H는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고 대신 군것질을 전혀 안한다. 퇴근하고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다보면 저녁 8시를 넘기 일쑤고 그때쯤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밤늦게 많이 먹어버린다. 하루빨리 패턴을 바꿔야겠다. 최고로 뚱뚱했던 시절의 몸무게를 다시 찍을까봐 겁난다.
일본행 비행기티켓은 결국 취소를 했다. 주말 일정으로 예약하면서 맞는 시간대로 구하느라 애를 썼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어떻게든 일정을 바꾸려고 했지만 출발일이 고정되어 있어 전체 출발-귀국 일정을 바꾸려면 취소하고 다시 예약해야 해서 수수료가 똑같다고 한다. 초밥먹으러 가자고 계획했던건데 그냥 수수료 금액으로 한국에서 초밥을 먹었어도 배터지게 먹었을텐데 아직도 배가 아프다 ㅠㅠ
나는 가족이란 개념을 부모님과 나와 형제자매로 생각하고 나머지 친척들은 그냥 친척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처음 시집와서는 삼촌 고모들과 같은 집에 살았고 또 맏며느리로서의 삶을 살다보니 친척들도 가족이라 여기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친척들이 우르르 몰려와 엄마를 하녀나 허드렛일 하는 사람처럼 대하는 걸 보며 오히려 그들에 대한 반감이 심해졌다. 가부장의 악습이나 남녀차별도 심한데 그것이 이미 내재화되어 있어 본인들은 문제라고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제기하면 금방 '애미애비도 모르는 놈'이 된다. 친오빠와 내가 성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우리는 집안에서 불필요하게 엄마의 노동을 요구하는 것들에 반대하고 없애버리려고 노력해왔다. 명절에 집에 내려가면 매의 눈으로 삼촌들이 엄마를 부려먹나 어쩌나 감시를 했다. 물 한잔도 엄마에게 떠오라고 할 정도니 우리집은 해도해도 너무 했다. 엄마는 불만이 있어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속으로 홧병이 날 뿐이다.
이제 나는 사사건건 엄마에게 친척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왜 오빠와 나는 결혼후 친척들 선물을 다 사왔는데 사촌언니는 안사왔는지, 새언니는 기독교 집안에 직장인에 서울에 사는데도 삼촌들은 왜 제삿날 평일에 휴가를 쓰고 오라고 하는지, 왜 사촌언니는 결혼 후 큰집인 우리집에 한번도 안오는지 등등이다. 엄마는 사촌언니는 결혼하면 우리집 사람이 아니니 안오는 거라고 하기에 그럼 엄마는 딸 시집보냈다고 아예 안보고 살거냐고 되물었다. 친척들이 가족애로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순덩어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제사나 명절이란 이유로 엄마가 희생할 필요는 없고 맏며느리라는 굴레에서도 빨리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분명한 점은 우리집 친척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받지 않으면 그들의 문제를 절대 개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