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개의 심장(미하일 불가꼬프) 본문
서점에서 끝없이 늘어선 책꽂이를 스쳐 지나가면서 책등의 제목과 작가이름을 훑는 것은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이다. 그 기분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으면 서점을 가거나 괜히 생각에도 없던 책을 몇권씩 집어들어 집으로 가져오게 되는 경험이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내 독서취향을 떠나서 작가 이름만 보고 외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러시아 문학들이다. 고백하자면, 러시아문학에 등장하는 길고 낯선 그 이름들 때문에 책 한권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도 정작 주인공의 이름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게 내겐 일상이다.
그런데도 러시아문학(이라고 해봤자 내가 접한건 세계문학전집 리스트에 올라 있는 유명작 몇권 뿐이지만)을 읽다보면 꼭 러시아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고 만다. 어두운 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섭게 눈이 휘몰아지치고 무릎까지 푹푹 들어가는데 어딘가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뒷모습을 희미한 가로등불만이 약하게 비추는 그런 장면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춥고 겨울이 되면 뇌까지 꽁꽁 얼어 붙을 것 같은 날씨에 몇 개월씩 '화창한 날씨가 주는 즐거움'도 모르고 지낸다면 사람은 얼마나 깊게 우울에 빠지게 될까? 그런 우울이 만연한 도시 속에서 작가가 쓰는 글들은 또 얼마나 깊은 우울일까, 그런 것이 궁금해져 책을 읽다가 딴 생각에 빠지는 일이 숱하다.
'개의 심장' 이라는 장편 소설은 초반에 굶주리고 학대받은 개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뭔가 먹을 것이 없나 기웃거리다가 성질 더러운 인간놈에게 걸려 또 발로 차이는 것이 두려워 차가운 건물 모퉁이에 몸을 웅크리고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하고 개가 죽어갈 때, 주인공 교수가 소시지를 던져주며 개를 구조한다. 따뜻한 집에서 몇일 머물며 기력을 회복한 개는 '샤릭'이라는 이름도 얻지만, 결국 개는 인간의 뇌하수체를 개에게 이식하는 연구의 실험에 이용되는 운명이었다.
실험은 성공하고, 수술에서 회복한 개 샤릭은 외모와 골격이 점점 사람과 비슷해지고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이나 행동은 모두 개의 수준에 머물 뿐이고 그 행패를 지켜보는 교수는 자신의 실험에 회의감을 느끼며 점점 건강을 잃어간다. 그리고 다시 수술을 통해 개를 원래의 개로 되돌려 놓았을 때 비로소 교수의 아파트에 평화가 찾아오게 된다.
줄거리는 위와 같지만, 사실 이 소설은 너무도 많은 상징을 품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인간의 모습은 갖추었지만 하는 짓은 개보다 못한 개인간 '샤리꼬프'를 혁명 이후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고, 소설 속에서 자신을 수술한 교수와 대립하는 혁명가들의 꼭두각시로 행동할 때는 야비한 기회주의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개의 시선으로 보는 인간들이란 계급과 관계없이 모두가 더럽고 잔인한 생명체일 뿐이고, 그래서 샤리꼬프가 인간의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내뱉는 말들에 모욕감과 수치심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
러시아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러시아어에 대한 지식이 좀 더 있었다면 유머가 포함된 장면들을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스스로 아쉽다고 생각했다. 함께 실린 짧은 단편 소설인 '악마의 서사시'는 비유, 함축, 상징, 암시가 너무가 심해서 내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역자해설을 읽어도 마찬가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책도 마찬가지인데, 올해는 꼭 제대로 된 세계사 책을 읽어야 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