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알려 주고 나서 계속 걷다 보니 더는 외롭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안내자이자 길잡이이며 토박이가 된 셈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사람 덕분에 나는 그 마을 사람이라는 특별한 신분을 부여받은 것이다.
〈딸이라 다행이야. 그 애가 커서 바보가 되면 좋겠어. 이런 세상에서는 예쁘고 귀여운 바보가 되는 게 최고지.〉」
왠지 모르게 여유 있는 동작과 잔디를 밟고 선 안정적인 자세는 그가 우리 마을 위 하늘 가운데 어디까지가 자기 구역인지 보러 나온 개츠비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도시 위에 높이 줄지어 있는 노란 창문들은 어두워지는 거리에서 무심히 고개를 든 사람에게 틀림없이 인간의 비밀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궁금해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끝없이 다양한 인생에 이끌리는 동시에 혐오감을 느끼면서, 나는 집 안에 있는 동시에 집 밖에 있는 것 같았다.
머틀은 자기 의자를 내 의자 가까이 끌고 오더니, 갑자기 더운 입김을 뿜으며 처음에 그녀가 톰을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다 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 미소는 영원히 변치 않을, 평생 네다섯 번이나 볼까 싶은 아주 보기 드문 미소였다. 영원한 세계를 잠시 보았거나 보는 듯한 미소, 당신을 위해, 당신에게 온 정신을 다해 집중하겠다는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을 이해하며, 당신이 믿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 자신을 믿어 주며, 당신이 전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인상을 정확히 받았다고 확인해 주는 그런 미소였다. 정확히 바로 그때 그 미소가 사라졌다. 나는 서른한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우아하지만 거친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공들여 격식을 갖춘 그의 말투는 겨우 어리석음을 면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가 자기 소개에 앞서 단어를 신중하게 골랐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으니 말이다.
「당신처럼 부주의한 사람을 만나면 어쩌죠?」
「그런 일이 없길 바라야죠.」 그녀가 대답했다. 「부주의한 사람은 싫어요. 그래서 당신을 좋아하는 거예요.」
뜨거운 햇빛에 지친 회색 시선은 정확히 정면을 향했지만, 그녀는 의도적으로 우리 관계를 변화시킨 것이다. 나는 잠시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느린 데다 욕망을 억제하는 내면의 규칙도 많았고, 고향 여자와의 연애 사건을 확실히 정리하는 게 급선무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한 주에 한 번 편지를 쓰고는 편지 끝에 〈당신의 사랑하는 닉〉이라고 서명하곤 했지만, 그 순간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그 여자가 테니스를 칠 때면 윗입술에 콧수염처럼 땀방울이 살짝 맺힌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유로워지려면 그녀와의 관계를 지혜롭게 정리해야 한다는 막연한 묵계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구나 기본적인 미덕 가운데 적어도 하나쯤은 지니고 있다고 믿는데, 내게도 그런 미덕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정직한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는 나를 곁눈질했다. 왜 조던 베이커가 그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교육받았다〉고 서둘러 말했는데, 마치 전에도 그 말을 하기가 괴로웠던 듯 말을 삼키거나 말을 하면서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런 의심을 하느라 그의 말이 모두 산산조각 나버렸다. 결국 그에게 좀 음흉한 구석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작별 인사를 하러 그들 쪽으로 갔을 때,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되돌아온 어리둥절한 표정을 목격했다. 지금 누리는 행복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희미하게 의심하는 듯한 그 표정. 5년이라! 바로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개츠비의 꿈에 못 미치는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데이지의 잘못이라기보다 개츠비가 품은 엄청난 환상 때문이다. 그의 환상은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능가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그 환상에 직접 뛰어들어, 언제나 그 환상을 끊임없이 키워 가며, 자기 앞에 떠도는 빛나는 낱낱의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어떤 강한 열정이나 순수함도 인간이 유령 같은 제 마음속 깊이 간직한 것에는 맞설 수가 없다.
그는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무언가를,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인 동시에 데이지를 사랑하게 만든 무언가를 되찾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가 그 모든 일을 천천히 되풀이할 수 있다면, 그는 그게 뭔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무섭도록 감상적이라고 느낀 그 순간에도 뭔가가 떠올랐다. 파악하기 어려운 리듬, 아니, 오래전 어디선가 들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단어의 파편 같은 것이랄까. 한순간 어떤 구절이 입가에 막 떠오르려 하면서 입술이 벙어리처럼 벌어졌다. 놀란 숨을 뱉을 때보다 더 안간힘을 써서 어떤 문장을 만들려는 듯이.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내가 기억할 뻔한 구절은 영원히 전달될 수 없는 무언가로 남게 되었다.
개츠비는 부유함이 가두어 지켜 주는 젊음과 신비, 수많은 산뜻한 새 옷들, 가난한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에서 벗어나 빛나는 은처럼 안전하고 당당한 데이지의 존재를 고통스럽게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전화도, 울프심도 오지 않았다. 더 많은 경찰과 사진기자, 신문기자 들만이 도착했을 뿐이다. 집사가 울프심의 답장을 가져왔을 때, 나는 비로소 그들 모두에 대한 반감, 개츠비와 나 사이의 모종의 냉소적인 연대감을 실감했다.
떠나기 전에 처리할 일이 하나 있었다. 어쩌면 내버려 두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를, 좀체 하고 싶지 않은 거북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을 정리하고 싶었다. 저 친절하고 무심한 바다가 내 쓰레기를 쓸어가 버릴 거라고 믿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역자해설 중에서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기껏 2만 5천 부 정도만이 팔린 것에서 알 수 있듯, 당대 독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으로서 미국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영문과의 필독서가 되었다. 판매 부수를 보면 미국에서만 해마다 30만 권 이상 팔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에 처음 번역된 후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의 대표 주자로서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런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닉 캐러웨이라는 1인칭 화자에 의한 독특한 서술 기법(형식), 동서고금 언제나 인기 있는 사랑 이야기(주제), 이 주제에 맞닿아 있는 〈아메리칸드림〉, 1차 세계 대전 이후 1920년대 재즈 시대의 충실한 재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도 큰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 작품은 1차 세계 대전 직후 광란의 〈재즈 시대〉의 초상화 내지 풍속도라 할 만큼 1920년대의 미국 사회를 잘 그려 내고 있다. 〈재즈 시대〉란 1차 세계 대전의 종전부터 1929년 경제 대공황 이전까지, 미국의 1920년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이 시기는 대전을 겪고 살아남았다는 기쁨과,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전쟁의 참상과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목격함에 따른 깊은 회의와 허무감이 교차하던 시대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는 IMF 때 큰돈을 벌어들였듯이,미국 상류층은 이 급격한 경제 성장의 시기에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들은 술과 재즈, 반짝이는 신형 자동차와 찰스턴 춤의 향락에 빠져 흥청망청 돈을 써댔다.
뉴욕 시 근교의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공간적 배경도 흥미롭다.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는 피츠제럴드가 한때 살았던 그레이트넥과 그 근처를 모델로 한 곳인데, 웨스트에그에는 〈어디 출신인지 모르는〉 개츠비 같은 신흥 부자들이 살고 이스트에그에는 폴로용 말 떼를 거느리고 동부에 나타난 톰 뷰캐넌처럼 조상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유서 깊은 가문의 귀족들이 산다. 이 두 지역은 지리적 차이뿐 아니라 경제적 차이 및 사회적 차이로도 설명되는데, 이런 차이는 미국 동부와 중서부 간의 차이와 연결된다. 흔히 동부 사람은 부유하고 세련되었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무책임하며, 중서부 사람은 촌스럽고 물질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으나 도덕적 순수성과 청교도적 가치관을 지닌 것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이 두 지역을 대변하는 톰과 개츠비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결국 개츠비가 어떻게 거부가 되었는지 알게 된 데이지는 남편에게 돌아서서, 자신이 저지른 온갖 부도덕한 죄를 개츠비에게 덮어씌우는 남편과 공모하며 남편의 악행을 수수방관한다. 그러므로 개츠비의 죽음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당하는 개인적인 죽음 외에 동부인에 의한 서부인의 죽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으로 읽게 된 작품이다. 책으로 읽으면서 영화의 캐스팅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이미지가 책속의 캐릭터들과 아주 비슷하다.
개츠비는 과거를 알 수 없는 남자였고 표정이나 행동에서도 어딘가 미심쩍고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는 남자였는데, 책을 읽어도 역시 그랬다.
데이지를 몇년간 사랑해 왔다는 순애보만이 개츠비를 좋게 봐줄 수 있는 점이었는데, 그만한 풍파를 겪고 세상을 적극적으로 돌파해온 남자가 결혼까지 한 여성을 간절히 사랑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그가 부를 축적해온 방법에는 불법과 부정이 가득했기 때문에 그런 순수를 가지고 있다는게 순순히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순수한 사랑보다도 본인이 순수했던 시절에 가졌던 감정에 대한 집착이 있었을 것이다. 몇년간 지속된 집착은 환상을 만들고 변질된 데이지(사랑만으로 개츠비를 택할 수 없었던)가 끝내 톰의 곁에 머문다고 했을 때 개츠비의 마음속 무언가도 무너져 내린게 아닐까.
열린책들의 역자해설에서는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한>이란 개츠비가 가진 순수한 사랑의 측면에서 그러하다고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역시 반어법으로 쓰인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개츠비에겐 어떤 신뢰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여전히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이유는 "재즈시대"라 불리는 때의 미국 동서부를 대변하는 인물들을 설정하고 개츠비에는 아메리칸드림을 상징성마저 넣었다는 점인데, 미국의 경제구조에 대한 비판과 아메리칸드림은 그저 다수의 하위계급을 착취하고 불법을 이용하여 일부의 상위계급이 쌓아올린 부를 좋게 포장하는 말일 뿐임을 꼬집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술에 취한 데이지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톰의 정부를 치여 죽이고 계속 차를 돌진했다는 부분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개츠비가 그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음을 맞이할 때 그를 그저 동정하기보다 오히려 불편함이 최고치에 이르러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데, 그 수많은 인간군상 중 어느 하나에 내가 속한다는 것을 의연중에 느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