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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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

진심.

앤_ 2016. 11. 26. 00:11



내일은 시댁에 김장하러 간다. 먼저 시집온 동서들은 그동안 김장때는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숙모님들 계시기도 하고 동서들은 임신-출산-육아를 겪고 있으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김장때 가서 도와드린다는게 조금 눈엣가시처럼 보일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매년 김장때마다 혼자 일하던 엄마 생각이 나서 굳이 가겠다고 했다. 낮엔 일하고 밤에 오셔서 배추 절이고 헹구고 물빼는걸 며칠씩 하던 엄마. 나는 어두운 밤 마당에 손전등을 들고 배추가 담긴 고무 다라이를 비추며 엄마 곁에 서있곤 했다. 우리 엄마는 아빠가 아픈 와중에도 김장은 하겠다는데, 정작 우리집 김장을 도울 수 있을진 모르겠다.

부모님 병원에 쫓아다니느라 남편을 혼자 두고 떠나있을 때가 많다. 착한 사람이라 내게 별말도 없고 오히려 자주 가있으라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시댁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놓고 뭐라고 하시진 않는데 전화통화에서 멀리 들리는 목소리 톤의 변화나 대화사이의 짧은 적막 같은 것을 무심히 넘길 수가 없다. 혼자하는 오해일수도 있고, 설사 이런 넘겨짚기가 맞다고 하더라도 눈치보지 않고 부모님 곁에 더 있고 싶다.

뜨개질은 계속되고 있다. 남편것은 완성했고 지금은 내것을 뜨고 있는데 속도가 형편없다. 손을 계속 움직이니 인터넷도 거의 하질 않는다. 일어나서 빵과 커피로 주로 아침을 먹고 뜨개질을 하다가 정오가 지나 오후에 햇살이 좀 나면 청소를 하고 다시 뜨개질을 한다. 오래 지속되던 무기력증과 아빠가 아픈 뒤에 왔던 울증도 뜨개질 덕분인지 호전되었다. 사실 예전의 무기력증은 이제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빠가 얼마나 더 곁에 있을까를 생각하며 멍하게 있느냐 아니면 몸을 일으켜 뭐라도 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아빠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나에게, (그만 놀고) 일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비록 태도는 조심스럽고 걱정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병원비가 부족해서 당장 내가 벌어야 하는 처지도 아니고 아빠가 아프다는걸 안지 이제 겨우 두달인데 말이다. 친오빠는 휴직이라도 쓰고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겐 그런 시간만이 간절하다. 아빠의 병세를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 아무도 만나기가 싫다.

요즘들어 '아들보다 딸이 낫다'는 엄마의 말은, 칭찬도 아니고 그저 나를 상처입히기만 한다. 어릴때부터 이미 그 말 한마디와 인정을 받고 싶어 부던히 노력해 왔던 나였다. 이제 와서야, 두 자녀을 출가시키고 아빠가 아프신 후에, 반복적으로 아들과 며느리에게 실망하고 나서야 그 말을 한다. 아들에게 실망하고 나서야 반사적으로. 그걸 이제 알았냐고, 엄마는 그냥 내 도움이 필요하니 이제와서 그런 소릴 하는게 아니냐고 자꾸 이런 말들이 목구멍으로 넘어온다. 그 진심조차 의심되는 이런 칭찬보다, 나는 엄마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 더 듣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 간호사 앞에서, 병원 환자들 앞에서 일부러 나를 칭찬하는 말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달라는 속박의 말로 들린다. 그래서 자꾸 화가 난다.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아팠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 곁에 있으면 자꾸 이런 생각과 감정들 때문에 힘들다. 표출하긴 힘들다. 참고 삭히는 것이 나를 학대하는 것 같다. 아빠가 아픈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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