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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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

눈이 왔으면.

앤_ 2016. 12. 5. 16:11


미세먼지가 심하다. 일어나 창밖을 봤는데 뿌옇게 흐린 시야 때문에 처음엔 안개인가 했다가 어제 뉴스에서 미세먼지 이야기를 들은게 생각났다. 

어제 밤에도 일년에 300번 정도 다짐하는 '내일부턴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보니 미세먼지 때문에 밖을 나가는 건 둘째고, 창을 열고 청소를 해도 될까 싶었다. 밥을 차려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후식까지 챙겨먹은 후에 앉아서 멍 좀 때리고 인터넷 쇼핑을 했다. 아빠가 주문해달라고 한 물건들과 뜨개질 실을 더 샀다. 그러고 나니 오후가 되었다. 집으로 볕이 조금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먼지가 심한 것 같아서 창을 열고 이불을 털고 청소기만 후딱 돌리고 다시 문을 닫았다. 오늘은 일주일에 하루 분리배출 하는 날이고, 약 한달간 월요일마다 집을 비웠기 때문에 한달치의 분리배출 쓰레기들이 집에 쌓여 있는데, 자꾸 마음이 게을러졌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사과를 하나 깎아 먹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사람도 춥고 고양이들도 추워서 거실에 자꾸 침구가 나온다. 털 청소라면 지긋지긋하지만 동시에 이제 익숙해지기도 해서 그리 힘들지 않은데, 냥이들이 자꾸 토를 해서 이틀에 한번씩은 이불을 빨게 만든다. 날씨가 추워서 소화능력이 떨어진 것일까, 헤어볼 사료를 먹여야 할까, 혹시 어디 아픈건 아닐까 마음이 동동거린다. 아까 청소하고 새로 빨아 널어둔 빳빳한 이불들을 소파와 거실바닥에 깔아 놓았더니 그새 나와서 냄새를 킁킁 맡고 각자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웠다. 내가 열심히 빨아서 바칠테니 아프지만 말아라.

그리고 오늘은 오랜만에 혼자 밥을 차려먹은 날이기도 했다. 시댁이든 친정이든 서울이든, 다녀오면 짐을 풀고 빨래를 해놓고 씻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하루이틀 자고 다시 짐을 챙겨 나가는 곳이 집이었다. 반찬 해놓고 집을 비운다고 해서 H가 혼자 잘 챙겨먹는 것도 아니고, 그도 연말이 다가오니 저녁 약속이 많아져 주로 먹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내가 있을 때 잘 먹지 못하는 배달음식들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니 장을 볼 필요도 없었고 식재료가 떨어지니 자연스레 요리는 안하게 되었다. 어제는 작정하고 H와 재래시장에 가서 양파, 호박, 두부, 돌김 등을 샀다. 들기름에 김도 굽고 겨울에 보기 드문 애호박을 채썰어 구웠더니 무척 달고 맛있었다. 무적의 김장김치가 있어 국도 없이 그렇게 먹었더니 맛있었다. 오늘 혼자 먹은 끼니도 메뉴는 비슷했다. 

결혼을 하고 나는 어쩌면 '기혼자'의 어떤 이미지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나다운 것'을 추구했고 혼자서도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랬는데 어느 순간 그걸 잊게 되었다. 아마 갑작스레 서울을 떠나와 새로운 도시에서,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새로운 곳에서, 또 알지 못했던 시댁 식구들 앞에서,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새로운 모습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나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버리고 싶은 단점들, 더 아름다운 취향에 대한 욕구, 성숙한 인격.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있는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새로운 곳에서 출발할 기회만 있으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블로그나 SNS의 단면만 보며 그들이 참 행복하고 부유한 삶을 사느리라 부러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가지고 있던 뜨개질 바늘과 뜨개실 몇 뭉치가 있었는데 찾지를 못하겠다. 설마 이사하면서 버렸을까 생각했다. 겨울이면 늘 찾던 취미였는데 말이다. 책도 엄청나게 버렸다. 대신 작년엔 옷을 많이 샀다. 지금은 손이 가지 않는 스타일과 색상의 옷들. 한번도 안 입은 옷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자신의 무엇이 그렇게 불만이었을까? 결혼은 새출발이라는 말이 어떤 주문처럼 느껴지기라도 했을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지도 말아야지. 아직 첫눈 오는 걸 못 봤다. 빨리 눈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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