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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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

홧병

앤_ 2016. 12. 5. 23:59

자려고 누웠다. 낮엔 시간을 낭비했지만 오후에 샤워하고 난 뒤 몸이 좀 따뜻해진 덕분인지 빨래도 두번 해서 널고 쓰레기도 양손 가득 두번이나 엘베를 오르내리며 내가버렸다. 김장김치 썰고 어묵탕 끓여서 밥먹었다.

결혼전엔 비건에 가깝게 먹고 다녔는데 결혼후엔 식탁에서 계란 없애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간보며 한점, 남은게 아까워서 한점 먹게 되고 어느샌가 혼자 먹을 때도 계란후라이를 부치고 있었다. 아직도 계란을 깨고 알끈을 걸러내고 하는 과정은 좀 스트레스 였지만, 그만큼 손쉽게 섭취할 단백질원이 없었다. 게다가 계란은 한알씩 팔지 않으니 유통기한내 섭취하려면 부지런히 먹어야 하는 아이러니 ㅠㅠ 그런데 한두달 전부턴 계란 먹을때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식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탄수화물 비중이 높아 단백질을 억지로라도 먹으려고 애썼는데 쉽지 않다. 몇년전엔 혼자서도 치킨 잘 시켜 먹는 나였는데.. 결론은 우리집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계란들이 있는데 그거 어떻게 버려야 하나 스트레스다ㅜ

냉장고가 김치통으로 가득찬 것과 별개로 마트는 가지 않을수가 없나보다. 육식하는 H를 위해 고기도 사다놔야 하고 야채도 사야한다. 인스턴트종류나 냉동하면 장기보관이 가능한 것들만 멀리하자.

오늘 집에 전화해보니 엄마는 본가에 있고 아빠는 시골집에 가있다고 한다. 엄마는 오늘 김장하려고 배추를 절여 놓았고 아빠 밥차려 주러 시골집에 다녀오셨단다. 아빠가 아프신 후로 엄마가 병간호하느라 잠시도 아빠 곁을 떠나지 못했는데, 각자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다. 아빠가 진단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사선치료를 하며 몸상태도 안좋고 식욕도 전혀 없어 끼니때마다 엄마와 실랑이를 했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짜증과 하소연 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빠가 아픈 마당에 엄마가 애도 아니고 그런것쯤 견뎌줬으면, 내게 표현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아마 각자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했을 것이다. 내일 김장한다는 엄마에게 지난주만 해도 가서 도와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그냥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에 갈 생각이 사라졌다. 엄마도 비슷한 마음일지 모르지.

엄마에게 짜증나는 건 이런 거다. 아빠가 시골집에서 자는데 살이 많이 빠져서 요 깔고 자는데도 자꾸 배긴다고(표준어가 생각 안남;) 해서 본가에 있는 퀸사이즈 침대를 시골집으로 옮긴다고 했다. 오빠든 외삼촌이든 삼촌 중 한명이든 남자 한명의 힘을 빌려 엄마와 둘이서 옮기겠다고 했다. 가뜩이나 다리관절이 성하지 않은데 무거운 침대를 엄마가 옮길 수 있다고 자꾸 우기는 거다. 그러다 다치면 골병들고 병원비만 더 든다고 그냥 용달 아저씨 한명 부르라는데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제 전화해보니 침대를 삼촌과 엄마 둘이서 옮겼다는데, 매트리스가 무거워 혼났다며, 그리고 복층인 본가의 2층에 있는 장농까지 옮겼다고 한다. 시골집은 입구가 좁아 차가 집앞까지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혼났다. 이제는 몸을 쓰는 만큼 병원비가 더 든다는 걸 몇번이나 말을 해도 듣질 않는다. 지금은 버티겠지만 몸에 그 부담이 차곡차곡 쌓이겠지. 그리고 나중에 엄마가 아프면 그 병간호는 내가 해야 할텐데 말이다. "그렇게 몸 혹사 시키다가 나중에 병나서 혼자 걷지도 못하게 되도 난 모른다, 병간호 안할거다, 다 엄마가 초래한 일이다" <- 이것보다 더 완곡하게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전화로 그것들 옮겼다는 얘기 듣는데 화가 나서 겨우 참았다.

머릿속에서 가족에 대한 걱정과 생각을 지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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