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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

저녁 풍경

앤_ 2016. 12. 29. 00:28



춥지만 햇살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

요즘은 H가 출근한 뒤에 따뜻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와 누워있다가 잠들기 일쑤이다. 꿈을 쫓다가 깼는데 12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커피 내리고 냉동해둔 빵을 렌지에 돌려 먹는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셔서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천변을 30분 정도 걷고 스타벅스로 갔다.

일기를 쓰니 시간이 벌써 꽤 지나 있었다. 내일은 아빠 병원에 다녀오려고 반찬을 좀 만들어야 했다. 그나마 가까운 홈플러스슈퍼에 갔는데 여긴 좀 물건들이 형편없다. 그래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선 여기가 제일 괜찮은 편이라ㅠㅠ 야채 몇가지 샀다. 소불고기거리도 사고 두부도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천 건너는 다리 위에서 노을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었다. 춥지만 견딜만 했고 시간도 6시가 채 되기 전이라 어쩐지 집에 가서 흰쌀밥에 맑은 된장국을 끓이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어제 해둔 현미밥과 콩나물국이 있었기 때문에.. 양파랑 당근을 썰어서 소불고기 양념과 재워놓았다. 고기와 양념이 따로 포징되어 있어 환자식으로 짜지 않게 만들기에 좋았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으니 적당히 양념을 넣고 재워뒀다가 H에게 저녁으로 먹이면서 간이 어떤지 물어봤다.

애호박이랑 양파만 넣고 전을 부쳤다. 내가 잘하는 메뉴였는데 이상하게 언젠가부터 자꾸 실패한다. 애호박 요즘 비싼데 먼저 부친 전은 거의 타버려서 건강이 염려되었지만 버리기도 아까워 그냥 먹었다. 두부를 부친 뒤 식혔다가 작게 썰어 양송이버섯, 피망, 당근, 양배추와 함께 볶았다. 들깨가루 듬뿍 넣고 무나물 만들고 취나물 한봉 사온 것 데쳐서 무쳤다. 취나물 딱 한줌 나오는게 안타까웠다. 더 사고 싶어도 신선한게 딱 한봉 남아 있고 나머지는 상태가 별로였다. 내일 아침에 오이무침해서 싸갈 생각이다. 한번도 아빠한테 제대로 된 밥상 차려준 적이 없는데, 그 대신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다. 요즘 게을러서 반찬 사오거나 하나로 며칠 때우고 그랬는데.. 요리가 느린 나는 이렇게 하고 뒷정리까지 좀 끝내고 나니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올해는 이렇다할 좋은 일도 없고 추석 이후론 아빠 아픈 것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딱히 한해를 되돌아보며 감상에 빠질 일이 없다. 나는 늘 12월이 되면 되던 일도 잘 안풀리는 노이로제가 있는 사람이라 오히려 들뜬 타인들 보면 괜히 예민해지기만 했다. 어차피 같은 해가 뜨고 지는데 해돋이 보러 가는 것도 잘 이해가 안되고 호들갑 떠는 것 같고 아무튼 좀 비딱한 구석이 있다. 한해가 가는게 아쉬운게 아니라 어서 그냥 좀 빨리 가버려라 구질구질하다~ 라는 쪽이랄까. 그런데도 오늘 카페에 앉아 있는데 어딘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어떤 점이 그랬는지는 더 생각해봐야 알 것 같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챙겨 나가야 한다. 서울 간 김에 쇼핑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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