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시간은 잘 가는 것 같은데. 본문
주말에 갔던 엄마 집 정원. 호랑나비 참 오랜만에 보았는데 컴퓨터로 크게 보니 조금 징그럽네, 으으. 마지막 사진엔 도마뱀이 있다. 작고 가늘어서 귀여웠지만, 도망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뱀 같았다.
시골집은 이제 봄이 되어 모든게 반짝거리고 눈부셨다. 아빠가 겨우내 아픈 와중에도 돌보았던 곳들이 봄이 오자 더욱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잡초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봄나물들이 자라나고, 겨울에 얼어죽을까 비닐로 작은 하우스를 만들어 줬던 애기 감귤나무, 가지치기를 한 포도줄기 끝에는 손톱만한 포도방울을 감싼 이파리들이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포도나무는 가지치기도 해줘야 하고 덩쿨이 타고 자라도록 지지대도 제대로 해줘야 하는데다, 비료나 약을 치지 않으면 집에서는 포도송이가 부실하게 맺히는데도 아빠는 이상하게 포도나무를 자꾸 길렀다. 어릴 때 쭉 살았던 본가 마당에도 포도나무를 심어서 1층 화단에서 2층까지 덩쿨이 올라가도록 멋드러지게 키우고는, 손이 많이 가고 귀찮다고 다음 해에 싹둑 자르거나 뽑아버리고 또 이듬해에는 포도 묘목을 구해와 심곤 했다. 시골집에 이런저런 묘목을 가져다 심을 때도 또 포도나무를 심었다길래 예사롭게 듣고 넘겼는데 아빠가 떠나고 나니 포도나무 키우기를 참 좋아하셨던 거구나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빠에게 약이 된다며 엄마가 어디서 구해다 심은 하얀 민들레 꽃이 여기저기 피었고, 내가 좋아한다고 작년부터 많이 심었던 딸기도 동그랗게 귀여운 꽃을 피웠다. 생긴건 전혀 다르지만 둘 다 보석같이 반짝이는 꽃이다. 내리쬐는 해가 눈부셨고 마당 텃밭을 종종거리니 땀이 나고 더웠다. 처마의 그늘 아래에는 아빠가 앉아서 쉬던 네모난 스티로폼 의자가 있다. 쪼그리고 앉으면 마당 텃밭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더위를 피해 멍하니 앉아 있으니 아빠의 잔상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듯 했다. 봄은 따뜻하고 새싹이 나고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니까 봄이 오면 아빠의 건강도 좋아질거라고, 엄마는 그렇게 겨울에도 텃밭에 비료를 묻고 김을 매고 돌멩이를 골라냈다. 그 즈음에 아빠는 이미 기력이 쇠해 텃밭의 소일거리도 오래 하지 못했다. 아마 이 자리에 앉아 엄마가 텃밭을 일구는 걸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봄이 오니 아빠가 계시지 않는 것만이 안타깝다.
시골집의 옆집에는 중국인 가족들 여럿이 세들어 산다. 근처의 수박 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다. 아빠가 계실 때는 가끔 작은 수박을 한통씩 가져다주었고 각자의 언어로 인사를 했다. 그런데 아빠가 떠나고 나니 엄마가 혼자 시골집에 가는게 괜히 이런 것까지 걱정이 된다. 안그래도 겁이 많은 엄마가 더 겁먹을까봐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빠가 계시지 않는다는게 이런 것이었다. 웃으며 얻어 먹던 수박마저도 우리는 이제 지레 겁먹고 움츠려든다. 텃밭에 앉아 힐끗거리며 옆집의 동태를 살피게 된다.
취미로 하는 텃밭 농사라지만 돌보는 것은 손이 많이 간다. 그리고 무거운 것, 힘이 많이 드는 것도 있다. 지금은 가까이 있는 외삼촌이 엄마를 많이 도와주는데, 그게 고맙지만 한편으론 아빠가 다듬고 손질해둔 흔적이 사라지고 외삼촌이 자기 텃밭처럼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아 괜히 골이 난다. 포도, 감, 사과, 꽃사과, 체리, 앵두, 자두 등등 과실나무를 많이 심었지만 아빠는 열매가 많이 맺히거나 적게 맺히거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엄마는 위치를 옮겨 심어야 한다고 하고 아빠는 그냥 두라고 자주 아웅다웅 했다. 하지만 외갓집 식구들은 과수원을 했던 집이라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과실나무 3그루나 나무에 접을 붙였다. 무슨 나무에 무슨 가지를 붙였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게 좀 싫다.
시간은 잘 가는 것 같은데 아빠 없는 시간이 흐른다는 걸 느낄때면 슬프다.
그리고 일기도 쓰다보면 여지없이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