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나들이. 본문
이제 오후 두시를 넘어가면 몹시 덥다. 앞뒤 창문을 열어놓고 환기를 시키면 좀 괜찮은데, 그나마도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일때는 그냥 에어컨을 켠다.
어제는 근교의 물가에 놀러갔다. 처음 가는 곳이었는데, 벌써 더위를 피해 가족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물가를 따라 한참이나 텐트가 이어졌다. 우리는 텐트까진 번거로워 돗자리만 가지고 가서 나무 그늘아래 눕거나 앉아 시간을 보냈다. 머리 위에 큰 벚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까맣게 익은 버찌열매가 바람이 불 때마다 툭툭 떨어져 내려 돗자리에도 얼룩이 남았다. 차멀미는 여전해서 이동하는 이삼십분의 시간은 매우 괴로웠지만 오랜만에 밖을 나가 파란 하늘도 보고 바람도 쐬니 기분은 좋았다.
밥은 밖에서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다섯시였다. 피로가 누적된 남편은 눈 붙인다고 자더니 열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밖에서 티비를 보며 기다리다가 아침까지 못 일어날거 같길래 나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남편은 그 뒤에 깬 모양이다. 어중간하게 깨서 놀다가 어중하게 다시 잠든 모양인지, 평소 5시만 되면 일어나는 남편이 오늘 아침은 8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사무실이 가까워서 그 시간에 일어나도 괜찮지, 이제 서울가서 지옥철을 타게 되면 꿈도 못 꿀 일.
나는 무슨 일인지 오늘 아침에는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마치 임신 전으로 돌아간 것마냥 가슴 답답한 것도, 속이 더부룩한 느낌도 없었다. 기분이 좋아서 아침부터 환기를 다 시키고 청소기도 돌리고, 오늘 할 일도 메모지에 몇가지 적었다. 그리고 고구마 한개 반과 차를 우려 먹고는 또다시 소화불량이 되어..... 점심때는 눈이 감겨서 잠깐 낮잠을 잤는데 오랜만에 가위에 눌려 된통 고생하고 깼다. 집을 어느정도 치워놓고 빨리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이사 나간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이래가지고는 언제 연락할지 ㅜㅜ 일단 내일은 집주인에게 알릴 생각이다.
아직 초기이긴 하지만, 나는 구역질이 나거나 토하는 입덧은 없다. 다만 차멀미가 아주 심해져서 차에 타서 시동을 걸기도 전에 멀미가 난다. 어릴 때 멀미가 꼭 이정도로 심했었다. 나는 학교에서 단체로 소풍이나 수학여행 가는게 제일 괴로웠다. 또다른 증상은 냄새와 맛에 아주 예민해져 요리를 하면 이삼십분씩 재료를 다듬고 지지고 볶고 하는 동안 그 냄새에 지쳐버린다. 채소라 해도 파프리카처럼 향이 강한 것은 싫다. 토마토도 특유의 향이 짙게 느껴져서 잘 안먹어진다. 이렇게 감각이 예민해질거면 초능력이라도 생겼으면 좋으련만 하고 오늘 잠깐 딴생각에 빠졌었다.
그래도 굶을 순 없어 뭐라도 먹다보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생기긴 한다. 감자,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류(옥수수도 먹을 수 있을거 같다), 매운 라면, 유부초밥.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잘 먹어지더라;; 그래도 초기엔 밀가루는 안먹는게 좋다고 해서 참고 있다. 오늘은 슈퍼에 거봉포도가 나왔고, 딱 봐도 알맹이도 작고 한박스 5송이 2만원이나 했지만 요즘 먹을 과일이 없어서 괴롭던 나는 그냥 사버렸다. 한송이 먹어보니 달지는 않고 시큼하기만 했다. 그래도 포도 오랜만에 먹으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