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꽃을. 본문
비가 온다. 비로소 장마같다.
서울에서 지냈던 십년간은 하루도 빗소리를 즐기지 못했다. 반지하방은 침수되고 물이 새서 벽지가 젖고 곰팡이가 피었다. 떠나기 전에 살았던 옥탑방은 아늑했지만 집주인과 갈등이 생긴 이후로는 그 집에서 편히 지낸 적이 없었다. 아마 빗소리는 내게 사색에 잠기기보다 심리적인 불안을 유발시킬 뿐이었다. 막막한 미래나 힘들었던 시절의 괴로움을 상기시키는.
조금 우울하다. 혼자 있고 싶고 낯선 곳에 있고 싶다. 이곳에 있기가 싫다. 우리집 창가에서 사무실 건물의 불빛이 보이는게,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내가 남긴 업무을 처리하고 있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든다. 나는 영웅적인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뜻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도망쳤을 뿐인 결과지만 내게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주말엔 꽃을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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