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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버지니아 울프)

앤_ 2014. 2. 5. 16:46

 


등대로

저자
버지니아 울프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3-06-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등대로』는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의식의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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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저 앞에 나타난 등대는 뚜렷한 흑백으로 삭막하게 우뚝 서 있었고, 바위에는 파도가 마치 박살 난 유리처럼 하얗게 조각조각 부서지고 있었다. 바위들의 울퉁불퉁한 윤곽도 눈에 들어왔다. 등대의 창문들도 보였는데, 그중 하나에는 흰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바위에는 녹색 뗏장이 조금 덮여 있었다. 한 남자가 나왔다가 망원경으로 그들을 보고는 다시 들어갔다. 그러니까 저렇게 생겼구나, 제임스는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맞은편 만에서 바라보았던 등대라는 것은 헐벗은 바위 위의 삭막한 탑일 뿐이었다. 그는 만족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성격에 관해 어렴풋이 느끼던 바를 확인해 주었다. 나이 든 부인네들은, 하고 그는 집의 정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아마 잔디밭에서 의자를 이리저리 끌고 있겠지. 가령 벡위스 노부인은 항상 인생이란 얼마나 좋은 것이냐 얼마나 감미로운 것이냐 그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해야 할 것이냐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사실 인생이란 꼭 저 등대 같은 것이리라고, 제임스는 바위 위에 우뚝 서 있는 등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자해설

특히 이것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도 작가의 심중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중략)이런 자전적 기록들을 보면, 『등대로』는 아주 세세한 데까지 작가 자신의 추억들로 점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녀는 나이가 꽤 들어서까지도 부모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이 작품을 쓰면서 비로소 그들을 <마음속에 묻어 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들에게도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그러면서도 괴팍한 성격으로 가족에게 부담을 안겨 주었다. 천재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감과 격정을 지닌 자라는 당대의 통념대로 그는 불같은 성정을 제어하지 않았으며, 한편으로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하여 늘 전전긍긍하는 면도 있었다. 문필가로서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진짜 천재는 못 된다는 자의식 때문에 늘 칭찬에 목말라하던 그를 <달래고 격려하고 영감을 주고 간호하고 기만하는> 역할을 도맡던 줄리아가 세상을 떠나고, 잠시나마 그 역할을 힘겹게 감당하던 스텔라마저 그 뒤를 잇자, 남은 두 딸은 마치 <야수와 함께 우리에 갇힌 것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울프에게 『등대로』의 첫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1913년에서 1916년 사이, 거듭되는 신경 쇠약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글을 쓰려다 보니, 『등대로』를 구상하게 된다 ─ 거기서는 내내 바닷소리가 들릴 것이다. 내 책들에 <소설> 대신 다른 명칭을 지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지니아 울프의 새로운 ○○○. 하지만 뭐라고 하지? 엘레지(哀歌)? 

애초의 구상에서 보듯이, 『등대로』는 작가 자신의 부모와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울프는 『등대로』를 쓰고서 비로소 어머니에 대한 고착에서 벗어났다고 하며, 아버지에 대해서도 비슷한 고백을 한 바 있다. 

울프는 1919년 에세이 「현대 소설론Modern Fiction」에서도 개진했듯이, 현실은 전통 소설에서 묘사하는 바와 같이 사실주의적인 세부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인상들의 소나기>라고 보며,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그런 삶의 실체를 그려 내려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에 의식의 흐름이니 내적 독백이니 하는 실험적 기법을 도입한 작가요 정신병을 앓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때문에, 지적이고 난해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했던 우울하고 불안한 인물이리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등대로』를 번역하면서 참조했던 그녀의 자전적 기록들과 일기를 보면 울프는 그런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감수성이 풍부하고 발랄한 여성이었으며, 특히 『등대로』에는 작가 자신도 지나치게 <센티멘털>해질까 우려했을 만큼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며 읽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읽었던 문단을 다시 또 읽고, 그 많은 비유와 묘사의 장면들을 눈 앞에 그려가며 마치 전공서적을 읽듯이 '성심성의껏'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에는 반도 미치지 못한 기분이다. 

이전에 읽었던 '댈러웨이 부인'에 대한 감상과, 의식의 흐림에 따른 글쓰기라는 방법으로 여성의 감성들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여성작가라는 인식때문에, 나는 혼자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을 대상으로 할 때만 잘 쓰는 작가라고 넘겨짚고 있었다. 그래서 책의 앞부분에서 나이와 성별과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의 시각을 하나하나 다르게, 또 섬세하게 표현하는 점에서 굉장히 놀랐다. 한편으론 이렇게 타인에 대해 관찰력이 뛰어나고 감정이입을 잘하고 장면과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너무 예민해서 삶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해설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오히려 '발랄한 여성'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음에도, 그렇다면 왜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까 하는 의문만 더 강하게 드는 것이다. 

해설 부분에서 작가는 이미 댈러웨이 부인을 완성할 때 쯔음 '등대로'의 구상에 들어갔고, 중간중간 몸이 아파서 글을 쓰지 못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이 소설을 굉장히 열정적으로 쓰고 싶어 했다고 나와 있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중 전자는 여성의 감수성, 특정한 여인의 삶에 촛점이 그려진데 비해 후자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죽음, 관계를 맺는 것이나 '등대'로 상징되는 것의 덧없음 등이 그려져 있어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마시면 마실수록 농후한 맛의 스펙트럼이 그려지는 와인같다. 그러면서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화자들의 생각이 그림을 가까이서 보았다가 멀리서 보았다가 하는 것처럼, 혹은 하나의 사소한 장면과 시선에서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것이 읽는 내내 멋진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구성에 있어서도 역자 해설 부분에서 잘 설명되어 있는데, 첫번째 장인 '창문'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램지부인에 대해 애정이 싹튼 터라 갑자기 두번째 장에서 그녀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괄호 속의 한 줄 문장으로 죽었다고 이야기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치 드라마에서 '몇년 후'라고 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듯 세번째 장에서 램지부인이 없는, 다른 몇몇의 인물도 죽음을 맞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계속 하는데, 어떻게 이런 구상을 했을까 놀라울 뿐이었다. 마지막 등대가 상징하는 부분까지 읽고 나니, 두번째 장에서 그렇게 세월의 흐름을 무상하게 표현한 것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작가의 일기가 책으로 나와 있어 언젠가 그녀의 작품을 많이 읽고 난 뒤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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