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메르 (이리저리 걸으며) 그동안 가족처럼 지내 왔는데, 그 친구 없이 지내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그 친구의 고독과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렇게 빛나는 우리들의 행복에 가려 언제나 어두웠던 거야.
노라 바로 그거예요. 당신은 날 전혀 이해하지 못해요. 난 정말 대단히 잘못된 취급을 받았다고요, 토르발. 처음에는 아빠 때문이었고, 그다음은 바로 당신 때문에요.
노라 그게 진실이에요, 토르발. 아빠와 집에 있을 때, 아빠는 자기 생각을 나에게 다 말해 주었고, 그러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곤 했어요. 하지만 아빠와 다른 생각이 들 땐, 난 그 생각을 감추어야 했어요. 아빠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빠는 나를 인형이라고 불렀어요. 내가 인형과 놀듯, 아빠는 나와 놀아 줬죠. 그러고 나서 난 당신 집으로 온 거예요.
노라 단지 재미있었을 뿐이죠.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잘해 줬어요. 하지만 이 집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가두어 두는 놀이터에 불과할 뿐이에요. 여기 있는 나는 당신의 아내라는 인형이죠. 아빠가 날 어린 인형으로 취급했던 것처럼요. 바꿔 말하면, 내 아이들 역시 내 인형이죠. 아이들과 놀면 재미있듯이 당신이 나에게 와서 놀아 주면 즐거웠던, 그게 우리들 결혼 생활이었어요, 토르발.
헬메르 집을 버리고, 남편과 아이들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봤어?
노라 상관없어요. 내가 아는 건 이 일이 내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뿐이에요.
헬메르 최악이군! 가장 신성한 의무를 모른 척하겠다는 거야?
노라 내가 가장 신성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헬메르 꼭 말해야 알겠어? 남편과 아이들 아닌가?
노라 나에겐 다른 의무가 있어요. 똑같이 신성한.
헬메르 아냐, 그런 게 어딨어. 도대체 그게 뭐야?
노라 나 자신에 대한 의무죠.
헬메르 당신은 아내이자 어머니야. 무엇보다도 먼저.
노라 난 더 이상 그렇게 믿지 않아요. 내가 믿는 건 내가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거예요. 아니라면 적어도 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처럼 생각한다는 걸 난 알아요, 토르발. 그리고 당신이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는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책들이 다 한결같은 목소리로 지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난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대해서도, 책에 쓰여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만족할 수 없어요. 그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나 스스로 깊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노라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당신의 생각과 말을 들으니 나와 인생을 함께할 사람 같지는 않군요. 당신은 내게 닥친 위험이 아니라, 어쩌면 당신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만 두려워했어요
유령
알빙 부인 조금 뒤에는 남편이 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소리를 낮춰서 하녀에게 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난 들었어요…. (짧은 웃음과 함께) 오,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절망적이었는데 이젠 익살맞게 들리네요….
알빙 부인 그리고 목사님, 곧이어 우리 모두가 유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뿐 아니라 모든 낡은 이론, 낡은 신념, 낡은 사물들이 우릴 따라다녀요. 살아 있는 건 아니지만, 떠나지 않고 우리 몸에 박혀 있지요.
역자 해설
입센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파산과 이른 독립,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열 살 연상인 하녀와의 사생아 출산 등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일반 남성의 시각과 다르게 형성된 그의 여성관은 크게 둘로 양분된다. 하나는 양성 평등이 전제된 독립된 개체로서의 여인(「인형의 집Et dukkehjem」의 노라와 「유령Gengangere」의 알빙 부인)이고, 또 하나는 어머니와 같이 영원하고도 이상적인 사랑의 전형으로서의 여인(「페르 귄트Peer Gynt」의 솔베이지)이다.
특히 「유령」은 10년 동안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출판과 판매가 금지될 정도로, 당시로선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신정옥은 한국에서의 입센 수용의 문제점에 대해 「인형의 집」은 <인간 해방을 상징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이를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사회 문제 연극으로 잘못 받아들임으로써> 입센 작품의 <미적 체계에 관해서는 등한시했다>고 주장했다.
「인형의 집」에 나타난 작가의 여성주의적 관점에 관해서 입센은, 1898년 5월 26일 노르웨이 여성 인권 단체의 초청으로 연설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나는 사회주의 철학보다는 시(詩)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난 여성의 권리가 진정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내가 보기에 여성의 문제는 모든 인류의 문제와 같은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내 작품을 자세히 읽어 본다면 이 점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보편적인 인간성을 묘사하는 것description of humanity이다.
입센은 스스로 <「인형의 집」은 「유령」이라는 작품을 위한 도입부이며, 준비 과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14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을 허락하기 전까지,「유령」은 20세기 새로운 연극의 발생지인 작은 규모의 사설 극장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공립 극장에서 공연이 금지된 작품이었다
이처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유령」이라는 작품을 통해 입센은 사회적인 규제로부터 개인적인 해방을 추구하고, 사회적 혹은 제도적 구속, 즉 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위선적 행동과 종교적인 편협함, 정치적 편의주의, 관습적인 도덕으로부터의 압박과 새롭게 만들어진 권위주의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희곡을 단지 공연을 위한 대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희곡의 문학적 구조와 그 토양에 대한 이해는 매우 진부하고 불필요한 발상이며, 연극의 희곡 문학적 예술성에 대한 언급 또한 무의미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인형의 집」에서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의 영향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도덕적 책임과 가족의 윤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에 대한 자의식을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종교적 세계관과 개인의 삶의 조건을 대립시키는 새로운 관점의 축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런 관점은 여성주의에서 주장하는 남녀평등의 사상적 바탕이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억압된 사회에서의 개인 해방>이라는 보다 확대된 해석이 가능하다.
「유령」은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에서 비롯된 당시의 치열한 논쟁,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입센의 입장을 은연중에 밝히는 작품으로, 기존 사회를 주도하던 종교관과 윤리 의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른바 종교적 관습에 대한 저항이자 사회주의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가 사회적 관습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 그리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과거와 현재의 <관념적 유령>에 희생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의 헨리크 입센 희곡선집으로 '인형의 집'과 '유령'이라는 두 작품이 실려 있다.
우선 '인형의 집'은 제3막에 이를 때까지 너무 뻔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가정 내에서 여성의 지위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남편에게는 종달새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전부라는 당시 여성의 역할을 계몽하기 위한 작품으로 여겨졌다. 나중에 역자해설에서는 이 희곡이 그저 여성해방 뿐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당시 작품을 읽을 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보다는 제 3막에서 항상 인형취급을 받던 노라가 자신의 남편이 어떤 인간 말종인지를 깨닫고 가슴 속에 있던 이야기를 조곤조곤 뱉어내며 마지막에는 자신을 붙잡는 남편을 뿌리치고, 아이들까지 내세우며 '아내의 신성한 의무' 운운하는 남편에게 자신에 대한 의무가 더 중요하다고 제대로 한 방 먹이고 미련없이 집을 떠나버리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깊고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근대역사에서 사회적 약자로 취급받는 대상들을 주제로 그들의 권익보호와 관습타파, 계층의 해방과 일반인 다수의 의식 계몽을 그 내용으로 하는 작품들을 읽을 때는, 그러한 내용이 다 지난 일로 현대 사회에서는 더이상 용납되지 않고 그래서 더 이상 별 가르침을 주지 않는 진부한 이야기로 읽혀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어머니' 역할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것을 굉장한 희생을 요하는 숭고한 역할로 인식하는 여성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가족은 소중하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삶 역시 중요하다는 걸 항상 잊어서는 안 되겠다.
두번째 희곡인 '유령'의 경우는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 시쳇말로 하면 약간 막장드라마 요소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막장에서는 그걸 얼마나 개연성있게 꾸며내고 독자로 하여금 정당화시키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희곡이다 보니 그런 배경에 대한 설명이 전무해서 흥미가 떨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무대 위에 올린다면 '유령'을 상징하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매력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구나 겉과 속을 알 수 없는 '엥스트란트' 캐릭터는 연극에서라면 누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극 전체의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역자해설의 내용이 아주 좋았다. 나는 세계문학을 그냥 그때그때 읽고 싶은 것을 골라 읽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작품을 읽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해설에서 작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그의 작품에 대한 당대의 평가, 현재의 평가, 그리고 해당 작품에 대해 작가는 무엇을 의도했으며 어떻게 읽히길 바라는지 정도의 정보가 들어 있으면 이해에 아주 도움이 되는데, 이 책의 역자해설은 그런면에서 아주 금쪽같은 해설이었다.
특히"희곡을 단지 공연을 위한 대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희곡의 문학적 구조와 그 토양에 대한 이해는 매우 진부하고 불필요한 발상이며, 연극의 희곡 문학적 예술성에 대한 언급 또한 무의미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나 역시 을 읽으면서 굳이 희곡을 연극으로 보지 않고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아쉽게도 그 답은 실려 있지 않았지만,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지루하지 않고 읽는 동안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