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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탐닉 -신이현

앤_ 2016. 7. 11. 14:38


열대탐닉 -신이현


한때 나 또한 통과했던 청춘, 그때는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기도했다. 청춘이 싫었고 인생이 싫었다. 마구잡이로 인생을 소비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다 지나와 버렸는데, 이곳에 오니 새로운 청춘들이 열기를 띠고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술을 홀짝이며 그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좀 지랄 같았다. 여기에 오려고, 빨리 늙어 버리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늙어서 청춘을 보고 있지니 갑자기 퇴물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쯤해서 청춘을 다 써버린 빈 껍질은 집에나 가야겠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을 집에서 먹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밥을 먹었다. 식당도 아침 시간이 가장 붐볐다. 나는 이 습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침부터 불을 피우고 음식을 볶고 그릇을 씻는 일들은 하루를 시작도 하기 전에 삶에 지쳐 버리게 했다. 다들 아침에 가는 단골집을 한두 곳쯤은 가지고 있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꾸기 어렵지. 로또라도 되면 모를까."

"맞아요. 인생은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지."

"그러나 여기서는 가능해요."

"그래, 어떻게?"

"그냥 여기에 와서 살면 인생이 바뀌어요. 나 봐요."

"망한 거지 그건. 그리고 난 별로 안 바뀌었어."

"다 가지고 왔으니까 그렇죠. 말이 안 통하는 아줌마야."

그는 휙 돌아서서 가더니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계절 과일들은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다. 다 거기서 거기다. 생긴 것도 맛도 냄새도, 평범하고 상식 안에 있다. 그러나 열대 과일들은 뭐랄까 충격이었다. 지구 위에 이런 괴상한 모양과 맛의 과일들도 있었구나. 땅에 뿌리박고 사는 모든 나무와 풀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열대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많은 이상야릇한 과일들을 먹으면서 많은 이상야릇한 생각을 했다고. 그중에서 두리안은 핵폭탄 급이었다.


이곳에 도착한 첫날을 잊을 수가 없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밖으로 나갔을 대 무엇인가가 나를 확 덮치며 뒤로 밀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더위였다. 이곳의 더위는 그냥 날씨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곰이나 코끼리 같은 거대한 동물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남편의 현지 동료들이 나와서 우리 가족에서 가족에게 하얀 꽃으로 엮은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머리를 어찔하게 하는 꽃 냄새였다. 이 꽃 역시 그냥 꽃이 아니라 고양이나 토끼처럼 묵직했다.


우리는 다시 뙤약볕을 걸어갔다. 모토들이 우리를 향해 왔고 잭은 그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 나라 말을 꽤나 잘했다. 좀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뭐랄까, 불꽃씨의 느낌이났다. 그는 삶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아 버린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것들, 말하자면 아파트나 자동차, 적금과 미래, 가족, 그런 것들을 넘어 버린 세상에 가 있었다. 지구 위의 같은 공기를 흡입하고 있었지만 다른 세계에 가 있었다. 그는 충만해 보였다. 신경질과 강박 증세가 사라져 있었다. 콧속으로 들어가 그를 사라 있게 하는 이 순간의 공기를 그냥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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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책,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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