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160923 금요일. 시골집에서 보내는 하룻밤 본문

일상의 순간들/아빠

160923 금요일. 시골집에서 보내는 하룻밤

앤_ 2016. 10. 5. 18:02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부모님이 시골집으로 이동할 준비를 거의 다 해놓으셨다. 시골집은 재작년에 부모님이 본가에서 차로 한시간이 안걸리는 거리의 시골에 구입하신, 텃밭 마당이 딸린 작은 집이다. 부모님도 은퇴를 생각하시며 부모님 고향 근처의 이곳저곳을 많이 알아보셨다고 한다. 마음에 꼭 드는 집이 나타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 집을 발견하고는 고민 않고 결정하셨다고 했다. 조립식의 작은 집과 텃밭은 한동안 부모님의 소일거리이자, 취미생활이자, 몰두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잡초를 베고 작은 과일나무들을 심고 자갈을 골라낸 땅은 텃밭을 만들어 토마토, 고추, 가지, 호박, 딸기 등을 심었다. 계절에 따라 상추, 배추, 무 씨앗도 뿌렸다. 주중엔 각자 일을 하러 가시고 주말이나 일이 없을 때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올 봄, 오빠부부와 우리부부와 부모님이 모두 모여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작은 집은 여섯명이 둘러 앉기엔 조금 좁았는데, 그래서인지 올 여름에 대대적인 공사를 해서 집을 넓혔다. 정면에 있는 한쪽 벽을 허물고 그 벽과 닿아 있는 거실과 방을 조금씩 앞으로 더 넓혔다. 나는 얘기만 듣고 실제로 가보긴 오늘이 처음이었다. 추석 명절에, 그때만 해도 그저 소화가 안되고 피로가 심해 혼자 시골집에서 쉬겠다던 아빠는 내가 궁금해하자 휴대폰에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고 거실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이걸 이쪽으로 넓히고 여기는 이런걸 설치하고 이쪽은 문은 어떻게 바꾸고 하며 설명을 해주셨다. 평소에 뭐든 시큰둥한 아빠가 시골집 이야기만 물으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아빠가 시골집에 가신 다음 날, 우리 다섯은 근처 대형마트의 전자제품매장에 가서는 그 집에 냉장고가 필요하지 않냐, 세탁기는 필요하지 않냐며 크고 반짝거리는 신모델들을 구경하며 신이 났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빠는 암 판정을 받았다.

시골집으로 향했다. 아픈 상태지만 아빠가 운전을 했다. 나는 면허를 딴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엊그제 아빠 차를 처음 운전해 보았는데 차가 너무 오래되어 브레이크나 핸들감이 너무 달라 어려웠다. 엄마는 운전을 꽤 오래 하셨지만 마찬가지로 오래된 대형 승용차인 아빠 차를 운전하기는 어려웠다. 너무 환자취급 하는 것도 그렇고 50분 남짓이니 괜찮지 않을까 하고 그냥 운전을 맡겼다. 치료가 길어지면 시골집에서 요양을 하신다 생각해서 집에 있는 도톰한 이불도 챙기고 며칠 먹을 양념이나 재료도 챙겼다. 

도착해보니 시골집은 상당히 넓어져 있었다. 고작 한쪽 면을 2미터 남짓 넓혔을 뿐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에는 좁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오히려 넓다는 느낌이 들 정도. 사람이 상주하는 집이 아니니 가구나 짐이 없어서 그런 점도 있지만 나중에 부모님이 계속 머무셔도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넓어져 있었다. 아빠는 집을 비우느라 잠가놓은 수도며 전기차단기며 조정하러 움직이시고 엄마도 텃밭에 마구잡이로 자란 채소들을 금방 솎아내서 요리를 시작하셨다. 나는 구석구석 부모님의 손길이 닿아 변화된 집을 안팎으로 몇번씩 돌며 살펴보았다. 점심은 맛있었다. 민들레를 넣고 끓인 씁쓸한 맛의 된장찌개와 내가 좋아하는 호박잎을 넣은 된장찌개, 부추무침과 무청 겉절이를 먹었다. 아빠가 아프신 뒤로 처음으로 좀 입맛 돌게 드신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아빠는 조금 주무시고 텃밭에서 고구마줄기를 잔뜩 땄다.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는 부추도 잔뜩, 아빠가 좋아하신다고 텃밭 여기저기에 많이 심은 머위잎도 땄다. 엄마와 마주 앉아서 열심히 다듬었다. 저녁은 그 나물들과 함께 갈치조림을 먹었던가? 기억이 벌써 사라져간다. 

그리고 해가 진 뒤에 동네를 산책하자며 부모님과 나섰다. 길고양이들이 많았고 집이 그리워졌다. 시골집에선 밤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그리고 온도가 뚝 떨어져 추워졌다. 창문을 모두 꼭꼭 닫았다. 씻고 엄마와 방에 누워 피곤함 때문에 금방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주말이고 남편이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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