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160924 토요일. 재회. 본문

일상의 순간들/아빠

160924 토요일. 재회.

앤_ 2016. 10. 5. 19:04

나는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부모님은 아침을 챙겨 드셨다. 남편이 오기로 한 날이다. 전날 시부모님이 계신 통영에 도착했다고 했다. 아침 일찍 올 줄 알았는데 점심쯤 온다고 연락이 왔다. 엄마는 나가서 풀을 베고 어제 잎을 따서 삶아 말린 피마자 잎을 살펴보셨다. 피마자(아주까리)잎은 그렇게 삶아서 말려두었다가 정월대보름에 나물로 먹는다고 한다. 키가 제법 크고 줄기가 굵게 자라 몰랐는데 일년생이라고 한다. 나중에 뾰족뾰족한 가시가 달린 열매가 마르고 나면 그 안에 있는 씨앗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늘 저녁에는 다시 본가로 가야 했다. 그래서 또 비워질 시골집의 텃밭을 정리했다. 엄마가 배추 씨앗을 잔뜩 뿌려 빼곡하게 자란 어린 모종들을 솎아 텃밭에 자리를 만들어 옮겨 심었다. 엄마가 옮겨 심고 아빠가 물을 주었는데 얼마나 섬세하게 물을 주는지 옮겨 심은 모종의 어린 잎에 물이 닿지 않게, 모종을 피해 그 옆으로 동그랗게 물을 주었다. 그냥 마구 물을 주면 잎이 흙에 붙어서 죽는다고 했다. 나는 무슨 얘기인지 사실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아빠가 물을 주다가 이파리에 흙이 튀자 또 잎을 하나하나 물로 씻고 흙을 떼내는 모습을 보자 참 우리 아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도 흙을 뒤집고 퇴비를 섞어 배추모종을 더 옮겨 심었다. 우선 모종을 솎아내는데 엄마가 뿌리가 다치지 않게 슥슥 솎아내는데 비해 나는 영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엄마가 솎아낸 모종에 흙이 잔뜩 달려 있어 그 흙을 털었더니, 원래 흙이 많이 붙어 있어야 잘 사는거라며, 엄마도 어이가 없으셨는지 웃으셨다. 심는 것은 전부 엄마가 하시고 나는 아빠가 하던 물주기를 맡았다. 아빠가 하던대로 모종을 피해 살금살금 물을 주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으니 그냥 듬뿍 물을 주라고 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살살 물을 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엄마가 한번 더 물을 주면서 아빠가 정성들여 물을 준 곳에도 듬뿍, 아주 시원하게 물을 주었다. 아빠의 세심한 손길이 다 허사가 되었다. 옮겨심은 모종은 대략 100개 정도 될까? 엄마 얘기론 그 중에서 10개만 살아남아도 겨울 내내 엄마와 아빠가 먹을 양은 충분하다고 하셨다. 나중에 집을 떠날 때 보니 어린 모종들이 축 쳐져 있어 걱정이 되었다. 다음에 부모님이 돌아왔을 때 기분이 좋아지도록 죽지 않고 잘 살아주기를.

오전 일과를 끝내고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남편은 갈치조림보다 구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갈치만 바로 구으면 되도록 나머지 찬들과 국을 다 준비했다. 어제와 비슷한 재료에 양념이 조금 달라진 나물들과 시래기국. 엄마는 한숨 돌리며 샤워를 하셨고, 나도 어제부터 꾀죄죄 했는데 귀찮아서 그냥 누워 있었다. 엄마가 젖은 머리를 말리고 계실 때 남편이 도착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시부모님이 함께 오셨다. 

이때의 기분이란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었다. 사실 아빠는 사람들을 만나는 걸 꺼리고 계셨다. 시부모님과 만나는 것은 내 결혼식 이후 10개월 만이었다. 아빠는 놀라신 와중에도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정리하셨다. 추석 전 지진이 났을 때도 엄마가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아빠는 옷을 다 갈아입고 멀끔하게 챙겨 집밖으로 나가셨다고 웃으며 얘기했을 정도로 우리 아빠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신다. 아파도 절대 환자처럼 하고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안그래도 불편하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시부모님이 갑작스레 오셨으니 나는 처음에 그게 기분이 나빴다. 남편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작고 낮은 목소리로 화를 냈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하며 시부모님이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얼굴 볼 수 있을지 모른다며 굳이 같이 가시겠다고 하는 걸 자기도 말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최소한 도착하기 전에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며칠 째 갈아입지도 못한 옷과 감지도 않은 머리를 한 몰골로 시부모님과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점심 차리실까봐 충무김밥을 사오셨는데 엄마가 밥 먹을 준비를 다 해뒀다며 갈치를 구워 밥상을 차렸다. 밥그릇도 국그릇도 부족했고, 다행스럽게 수저가 6벌이 있었다. 시부모님도 얼굴만 뵈러 오셨는데 엄마가 손님접대를 한다고 그렇게 차리니 죄송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밥을 먹으며 엄마가 그간의 일을 말씀하시는데 횡설수설 하시기도 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모두가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을 것 같다. 

건강하신 시부모님과 아프고 지치고 그래서 초라해진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 슬퍼졌다. 시부모님이 떠나도록 내 표정은 계속 어두웠던 것 같다. 엄마는 자꾸 시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했다. 아빠가 아픈게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자꾸 죄인처럼 구는 엄마에게 짜증이 났다. 맞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시부모님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다 건강한데 아빠한테 찾아온 병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우리 가족에게만 갑자기 불행이 찾아온게 화가 났다. 세상에게 화가 났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첫 순간이 오늘이었고, 그래서 그걸 오늘 처음에야 느끼고 분통이 터진 것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며 위로해 왔지만 내 안에 삭히지 못한, 대상을 알 수 없는 화가 계속 쌓여만 왔다.

밥을 먹고 시부모님이 싸오신 충무김밥도 꺼내어 먹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신 시부모님을 배웅하러 나갔다. 어른들은 어른들만의 공감대가 있는지 나와 늘 하던 얘기를 하는데도 분위기가 달랐다. 이 시골집에 대한 이야기, 골목을 빠져나가며 이 동네와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시부모님이 차에 타시기 전에 부모님이 쉬는 날 멀리서 오셨다며 봉투에 돈을 넣어 드렸고, 시어머니가 그걸 한사코 거절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웃음이 나왔고, 아직 우리에게 이런 일상이 있다는 걸 느꼈고, 시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모두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면 좋을텐데.

시골집을 정리하고 본가로 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텃밭 채소를 챙기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모두 싸야 했다. 짐을 싣고 차단기를 내리고 수도까지 잠그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본가로 향했다. 아빠의 오래된 차가 앞장서고 우리 차가 뒤를 쫓았다. 본가에 와서 저녁은 간단히 먹었던 것 같다. 충무김밥이 많이 남아 있어서 반찬 몇가지와 그걸 꺼내놓고 먹었다. 아빠는 따로 밥을 해서 드렸던 것 같다. 엄마는 충무김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그걸 좋아하는지 몰랐다. 좋아하는데도 지금은 입맛이 그리 돌지 않는다고 조금만 드셨다. 

저녁을 먹고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자며 나섰다. 아빠는 집에서 쉰다고 해서 남편과 셋이서 갔다. 시골집에 갔을 때 그곳에 있는 시장에서 과일을 샀는데 영 맛이 없었다. 아빠가 아픈 중에도 포도를 잘 드셔서 서울 가기 전에 맛있는 포도도 사고 사과도 좀 사자고 했다. 서울에서도 마트는 있는데 엄마가 고향에서 단골로 가는 과일집에서 파는 것 만큼 맛있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빠 옷도 사기로 했다. 아빠는 오랫동안 회사생활을 하며 와이셔츠를 입고 다녔다. 중소기업이라 복장규율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무직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회사에 가실 땐 항상 와이셔츠만 고집하셨다. 그래서 편하게 입을 옷이 없다고 했다. 아빠는 까다로운 기준이 있어서 꼭 넥칼라가 있는 옷만 입고 동그란 넥 티셔츠는 잠옷 아니고서는 절대 입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에 간 김에 옷가게에 들러서 넥칼라가 있는 긴팔 티셔츠를 샀다.

아빠는 사실 옷을 좋아한다. 그런데 본인만의 스타일이랄까, 고집이 확실해서 옷을 선물하기가 여간 어렵다. 색이나 무늬나 디자인 중에 하나라도 마음에 안들면 사줘도 절대 입지 않는다. 아빠와 함께 옷을 사러 가는게 가장 좋은데, 또 부모님과 함께 옷을 사러 백화점이라도 가면, 엄마가 옷이 너무 비싸다고 눈치를 준다. 그래서 아빠한테 옷을 사드린 적이 별로 없다. 아마 엄마도 아빠에게 좋은 옷을 더 입혀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의 속을 알것만 같은데 그걸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쏟아져서 일부러 생각을 지우게 된다. 시장이라도 그리 싼 가격은 아니었다. 환자들이 거울을 보았을 때 옷이 환해야 얼굴이 밝아 보이고 기분도 좋아진다며 유난히 밝은 색 옷을 찾았다. 살은 찌지 않았는데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아빠는 105를 입는다. 시장가게라서 사이즈가 다 구비되어 있지 않아 있는 옷 중에 골라야 했다. 두벌을 사고 나왔다. 엄마가 나중에 아빠에겐 '내가 골랐다'고 얘기하라며, 그래야 옷이 혹시 마음에 안들어도 입을거라고 충고를 했다.

그리고 과일가게에서 사과 반박스와 거봉 한박스(3송이)를 샀다. 나오는 길에 고구마도 샀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셨다. 엄마가 사온 옷을 입어보라며 꺼냈고 엄마의 충고대로 나는 내가 골랐다고 했다. 아프고 살이 더 빠져서 소매부분 따위가 헐렁해졌지만 역시 아빠는 105 사이즈가 잘 맞았다. 내일은 대전에 있는 우리집으로 가기로 했다. 하룻밤 자고 월요일 아침 일찍 서울의 병원으로 간다. 엄마는 본격적인 입원 준비물을 챙겼다. 잠자리 예민한 아빠때문에 베개도 챙겼다. 지난 번에 서울에서 내려올 때 다음에 또 찾게 될 물건들이라며 옷가지 등 물건을 오빠네 집에 두고 왔다. 그래서 옷은 별로 챙길것이 없었고, 보호자용 침구는 혹시라도 버리고 올 수 있도록 낡은 이불들을 챙겼다. 모두 내가 어릴때부터 쓰던 것들이다. 짐을 챙기는 엄마를 보는데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게 보였다. 부모님 연령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빠도 엄마도 머리가 검은 편이었는데 엄마가 또 늙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