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h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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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아빠

160927 화요일. 첫 색전술.

앤_ 2016. 10. 12. 17:11

아침에 8시쯤 오빠네서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셔틀버스가 운행하는 지하철역에 내렸는데 벌써 줄이 길었다. 대부분 노인들이거나 환자분들. 그냥 걸어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불가리스와 바나나를 샀다. 색전술을 받고 나면 몇시간동안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게 생각나서 편의점에서 목이 꺽이는 빨대도 몇 개 챙겼다. 암병동까지 걸어가니 시간이 꽤 걸려 아빠 병실에 도착하니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벌써 색전술 받으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날 간호사 말씀에 따르면 보통 오전에 색전술을 받는데 차례가 늦으면 오후가 될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금식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오전에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일찍 들어가게 될지는 몰랐다. 환자복도 갈아입으셨는데, 다리 양 옆에 트여 끈으로 묶는 형태의 환자복이었다. 발등 위에는 매직으로 표시한 x자가 있었다. 나중에 보니 맥박 뛰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짐을 내려놓고 잘 잤냐는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곧 아빠를 데리고 가는 분이 오셨다. 아빠는 누워있고 침대째로 이동하여 엘레베이터를 탔다. 같이 동행하는 엄마와 나를 보더니 아저씨가 거긴 내려가도 앉아서 기다리는 곳이 없다며 그냥 병실에 계시라 했는데 그래도 아빠 혼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일단 동행했다. 같은 병동의 아래층이었는데, 엘레베이터를 내리자 정말 병원복도같은 삭막한 공간이 나왔다. 바로 들어간다고 해서 아빠에게 잘하고 나오라 인사를 했고 그냥 누은 채의 아빠가 문을 지나고 또 문을 지나 들어갔고 맨 처음 열렸던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앉을 곳이 없기도 했고, 거기서 기다리면 시간이 더 안갈 것 같아 엄마를 모시고 병실로 올라왔다. 문 너머는 우리 손에 달린게 아니니까, 마음이야 아빠에게 쏠려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똑같다고 해도 그냥 병실에서 기다리자고. 그리고 보호자용 작은 침대에 옆으로 앉아 텅 빈 환자침대가 있던 공간을 바라보며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둘다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얘기를 했을 뿐,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는 기억에 별로 남지 않았다. 색전술이 효과가 많은 사람도 있더라, 간단한 시술이라더라, 뭐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딱 한시간이 지나 아빠가 침대에 그대로 누워 다시 돌아왔다.

시술을 하는 다리에만 국소마취를 했다고 한다. 관이 동맥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지혈이 중요한데, 5만원짜리 패치와 10만원짜리 패치가 있다고 했다. 엄마가 나 없을 때 아침에 간호사가 물어보고 갔다며 잘 모르지만 환자한테 한다는데 10만원짜리로 했다고 보험 안되는 거라고 했다. 그 피채위에 모래주머니를 얹어 놓고 두시간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한다. 고개만 옆으로 돌려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아빠는 빨대로 물을 좀 드셨고 일단은 별다른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당장 나타나진 않았다. 다만 좀 덥다고 하셔서 병원 지하로 내려가 작은 손부채를 사서 올라왔다. 발열은 색전술 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두시간이 지나자 다시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고 지혈이 잘 되었는지 체크 후 화장실을 가거나 조금 움직여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색전술 후에 6~8시간 정도는 지혈을 위해 꼼짝도 하면 안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화장실에 다녀오신 뒤 점심을 드셨던가? 환자식이 안나왔던 것 같다. 엄마랑 지하에 내려가 밥을 먹었다. 나는 순두부찌개를 먹고 엄마는 황태곰탕을 드셨다. 아빠를 혼자 둔게 불안하여 후루룩 먹고 다시 올라갔다. 엄마를 아빠 곁에 두고 밖으로 나와 휴게실에서 잠시 쉬었다. 쉬고 있는데 아빠 병실을 옮긴다고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몇개의 가방에 든 짐은 엄마와 내가 하나씩 어깨에 매거나 들었고, 아빠는 휠체어에 옮겨 탔다. 휠체어 밀어주는 아주머니도 따로 계셨다. 색전술 후에 많이 움직이면 안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빠를 휠체어에 옮겨 타고 이렇게 움직여도 되는지 불안했다.

그리고 우리는 2인실에서 6인실로 옮겨갔다. 엄마가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창가쪽 침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창가쪽으로 오니 바깥 풍경도 보이고 날씨도 보이고, 구석이라 훨씬 사생활이 보장되어 더 안락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다시 침대에 눕고 간단히 짐을 풀고 나는 저녁먹는 시간에 맞춰 오겠다며 다시 병실을 나왔다. 보호자 출입증은 두개를 받았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여분으로 나온 하나로 자유롭게 출입을 한다지만, 원칙상 보호자는 1명이 상주할 수 있는 터라 혹시 주변 환자들이나 간호사 선생님께 눈치가 보일까봐 잠깐씩 들렀다가 곧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빠가 입원한 병실은 색전술같은 시술을 받는 환자들이 단기간 입원하는 병동이라 다들 보호자가 한명이든 두명이든 별로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았다. 다른 환자분들은 몇차례 경험이 있는지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고, 병실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지만 않으면 상관 없어 보였다. 

아무튼 밖을 둘러보니 여성 환자들이 많고 특실이 같은 층에 있던 5층과는 달리, 8층 병동은 남성 환자들이 많고 한 층이 전부 입원실이라 환자들 수가 많아서 휴게실이나 간이주방이나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 좀 지저분했다. 5층에 있다가 엄마가 전화가 와서 담당의가 회진을 돈다고 해서 급하게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담당의 아래에 수련의와 간호사 선생님 여럿이 들어와서 상태는 어떠냐 기분은 어떠냐 묻고, 간 부위를 눌러보며 통증이 있냐고 물었다. 종양 크기에 비해 통증도 별로 없고 좋은 편이라고 하며 회진이 끝났다. 내가 '손을 들고' 색전술이 효과가 있는지는 언제쯤 알게 되냐고 물었는데, 교수가 뭐라고 했는지 대답이 기억이 안난다. 왜냐하면 너무 어이없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다고 했던가, 뭔가 기가 막힌 대답을 했고 벙 쪄서 듣자마다 잊어버렸다. 특진비를 내며 진료를 받는데 비해 담당의의 진료나 상담의 무성의하고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다는 불만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진료를 받을 때마다 나아지질 않았다.

저녁이 나왔고 아빠는 생각보다 많이 드셨다. 계속 금식한 이후 중간에 내가 사간 바나나를 조금 드셨다고 했으니 배가 고프셨을 거다. 입맛은 없을 텐데 억지로 드신다. 누군가 그랬다, 모래를 씹는 기분이라고. 나는 엄마와 나와서 다시 병원 지하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새우오므라이스를 먹었고 엄마는 돈까스를 드셨다. 밥을 가장 잘 챙겨먹어야 할 사람이 엄마다. 돈까스는 평소에도 잘 드시는 음식이 아닌데 거기 푸드코트에 돈까스를 먹는 사람이 많아서 맛있나보다고 엄마가 먹을까? 하길래 옆에서 그러라고 보채서 주문을 했다. 음식 포장도 가능하고, 가격대는 7천원~1만원 선으로 서울의 여느 식당에서 비싸고 맛없는 음식보다는 지하의 푸드코트가 더 괜찮은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다시 아빠 병실로 갔다. 면회시간은 8시면 끝나는데 오빠와 언니는 퇴근이 늦어 오늘 면회는 못온다고 했다. 밥먹고 아빠 병실에 조금 앉아 있는데 아빠가 자꾸 그만 가라고 나를 보낸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병원 셔틀시간은 이미 끝났고 오가는 마을버스가 있어 그걸 타고 나가 지하철을 탔다. 오빠네 집으로 가서 색전술이 잘 되어 다행이라고 언니오빠와 입을 모았다. 하지만 머리속에 다른 걱정도 떠올랐다. 색전술이 잘 되어, 아빠 몸에 맞아서 다행히 부작용이 적은 걸까, 아니면 아무 효과도 없어서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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