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의 순간들/아빠 (17)
Fright Night
9월 19일 월요일, 지역병원에서 검사한 결과와 의뢰서를 가지고 삼성병원에 내원, 채혈, 소변검사, 복부 씨티를 촬영하고 다음날로 검사결과 예약함. 아빠가 통증이 있다고 하여 진통제를 처방받았음.9월 20일 화요일, 간암으로 진단, 수술 불가능하니 색전술과 방사선치료를 받기로 하고 다른 부위에 전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추가검사를 받고 그 검사결과를 확인할 진료예약도 잡음. 진료실을 나와 상담실에서 책임간호사와 관련된 일정을 모두 예약하고 설명도 들음.추가검사는 흉부 씨티, 뼈검사, 간mri로 앞의 두개는 다음날, mri는 금요일 새벽 1:50으로 예약됨. 같은 날 검사받는 걸 원했으나 mri는 많이 밀려있어서 그게 제일 빠르다고 함. 검사결과는 26일 월요일 오전에 듣기로 하였음. 색전술은 수술 하..
정신없고 바빠서 일기가 밀렸다. 오늘 아침에 오빠네서 짐을 챙겨 아빠집으로 왔다. 고속버스로 4시간 20분 정도 걸렸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20분 정도 쉬었는데 아무래도 장시간 차량으로 움직여서 아빠가 피곤해 하셨다. 우리 아빠는 차에서 전혀 잠을 못 주무시고 목을 꼿꼿이 하고 앉아 계신다. 젊을 때의 나도 그랬다. 정말정말 피곤해야 겨우 삼십분 잘 정도고 지금은 차에서 잠을 자지 않아도 휴대폰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시간을 보내니 그나마 괜찮다. 그런데 아빠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만 계셨으니 오죽 하셨을까. 엄마라도 차에서 좀 주무셨으면 했는데 하필 우리 바로 뒷줄에 앉은 남자분이 코를 계속 큼킁 거리더니 잠들어서는 엄청 큰 소리로 코를 골아서 모두가 차에선 잠을 못잤다. 요즘 모든 신경이 ..
우느라 잠을 못자겠다. 옆에 아빠와 엄마가 주무시고 계신다. 요즘 다들 잠을 못자기 때문에 혹시라도 깰까봐 숨 죽인채 울었다. 지금 휴대폰 조명조차 조마조마하다. 오늘은 어제 찍은 씨티촬영 결과를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그게 고작 어제 일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번 감정을 컨트롤 하려하고 울컥하는 걸 참는다. 지금 시간은 괴롭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에겐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종종 멍해질때면 이게 다 꿈이길, 악몽에서 깨어나 엉엉 울고 아빠에게 전화를 해 무서운 꿈을 꿨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진료예약은 오후 3시50분. 오빠와 올케언니는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했고 함께 병원으로 갔다. 진단은 함께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어제는 암센터로 갔었는데 오늘..
오전에 삼성병원에 들러서 담당교수와 첫 진료. 진단서와 초음파 사진에 기초해서 건강에 대한 간단한 질의응답을 하고 필요한 검사를 했다. 채혈, 소변검사, 씨티촬영 후 처방받은 진통제를 받아서 오빠네 집으로 왔다.오빠 집은 강남역 인근으로 방1, 거실겸 주방으로 부모님과 오빠부부와 나와 고양이 한마리가 있으니 복작복작하다. 그래도 아빠는 어제 호텔에서 묵은데 비해 가족들이 함께 있으니 컨디션도 좀 나아지는 것 같고 가족들로서도 각각 떨어져 무한의 걱정을 하는 것 보다 모여 있는 것이 심적으로 나은 것 같다. 다만 여기는 좁은 공간에 여럿이 모여 있어 노트북을 켜고 이러한 일기를 작성하기는 조금 어렵다. 모니터 화면의 밝기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타자를 치고 있다.어제 마음이 심란하여 안절부절 했던 나와 달리,..
서울가는 버스를 탔다. 출발 대기중이다. 이곳 터미널은 예전에 남편이랑 같이 이용한 적이 있는데 그땐 따라다니기만 해서 혼자 오니 좀 헤맸다. 고속,시외버스용 발권기가 각각 따로 있는 줄 모르고 예약내역이 없다고 나와 매표창구에 문의하니 아저씨가 시큰둥하게 알려줬다. 터미널 앞에서 한쪽이 지워지기 시작한 보름달을 보았다. 챙겨가는 물건들 몇가지를 메모해둔다. 백팩 하나와 토트백 하나. 엄마 곁에서 짐도 들어주고 해야 할것 같아 너무 무겁지 않게 싸려고 했다. 노트북이 들어가니 부피는 비슷한데 무게 차이가 나긴 난다. 일회용 마스크, 지퍼백 2종, 필기구, 검은 비닐봉지, 손잡이 달린 튼튼한 면세점 봉지(짐이 나중에 늘어날 경우를 대비), 가위(포장지를 뜯거나 새물건 샀을 때 택 제거용), 인스턴트 커피와..
어제 밤엔 방에 누워 폰으로 인터넷을 떠돌며 한참 누워 있었다. 입원환자의 준비물 등을 알아보다보니 병마와 싸우고 있는 다른 분들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분들이 좌절과 절망 후 희망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내 걱정과 슬픔이 끝이 아님이 너무 감사하다.점심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직접 손으로 삼성병원 내원 일자와 시간, 담당교수님 이름, 찾아가야 할 곳을 써주셨는데 엄마가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교수님 이름이 ㅇㅇㅇ이 맞냐는 확인전화였다. 워낙 놀라고 경황이 없으셨으니 잃어버릴만 하시지. 다행히 내가 사진을 찍어두었기 때문에 카톡으로 보내드렸다. 그리고 아빠는 '출근했다'고 하셨다. 아마 오늘이 아빠의 마지막 출근일 것이다. 쉬지 않고 ..
이 글은 오로지 사랑하는 아빠를 위해 쓰는 글이다. 연휴 첫날 귀향하여 시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에 있다가 추석 당일 친정집으로 갔다. 아빠가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엄마랑 통화할때 요즘 아빠가 자꾸 소화가 안되고 체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여름 내내 아빠가 일하는 곳에서 일이 너무 많아 주말도 없이 연일 출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도 나도 그냥 피로가 누적되어 그러려니 하고 이번달까지만 바쁘고 나면 쉴 수 있다고 해서 다시 좋아지시겠지라고 생각했다. 살은 좀 빠지셨어도 워낙 건강하고 몸이 탄탄한 편이라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명절에 우리가족이 모이면 너무 좋아서 신나하시는 아버지가 우울하고 기력이 없어 보여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연휴동안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시골집에 가서 지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