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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ght Night
어제는 서울에 다녀왔다. 아빠는 지난달에 2차 색전술을 받고 퇴원하시고 3주만에 있는 검사 때문에 다시 서울로 가셨다. 우리 올케언니는 가끔 부모님이 계시는 도시로 출장을 가는데 이번엔 일부러 월요일로 출장을 잡아 저녁에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 저녁에 도착하셔서 늘 입원하시는 요양병원으로 가셨고 화요일인 어제는 진료가 있었다. 지난주쯤 발등과 발목이 붓는 부종이 생겨서 증상 때문에 진료가 있었다. 나는 오전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서 점심때가 조금 지나 요양병원에 도착했고, 병원 셔틀차량을 타고 가서 진료를 보았다. 주치의는 항상 진료시간이 1분내외로 아주 짧은데, 이번에도 부종이 있다고 하니 이뇨제를 드시라, 기침이 있다고 하니 기침약을 드시라며 진료가 끝났다. 몇번이나 겪은 일..
춥지만 맑은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앉아 있었더니 제법 추워서 전기히터를 켰다. 우리집은 베란다창이 남서향이라 겨울에는 정오가 지나야 볕이 들어온다. 추가로 주문한 털실이 오전에 택배로 왔다. 꽤 오래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지겹기도 하고 내일까진 완성하려고 뜨개질감을 들고 오랜만에 카페에 왔다. 카페에서는 뜨개질 마저도 잘 된다. 집에서는 주로 아무 채널이나 티비를 켜놓고 하는데, 청소할 거리나 주전부리를 챙기다보니 속도가 나질 않는다. 카페에서 실 한뭉치 다 뜨고 손이 아파서 잠깐 쉬는 중이다. 뜨개질하는 속도는 한계가 있는데 자꾸 실을 사재기 하고있다. 마침 겨울이라 할인하는 실들이 잔뜩이라 부추김을 당한다. 며칠 전에도 부족한 실 몇뭉치만 사겠다는게 색이 이쁜 실이 있어 샀는데 오늘 택..
오늘은 노을도 이뻤다. 국회 생중계 본 뒤 씻고 챙겨서 H 마중나갔고 둘이 함께 코스트코 가서 소고기를 샀다. 고기 좀 굽고 어제 먹었던 것과 같은 반찬과 국으로 저녁을 먹으며 뉴스룸을 봤다. 오랜만에 소고기 먹더니 맛있단다. 남은 건 내일 시골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자기전에 보일러를 켠다. 바닥이 막 뜨끈한 정도는 아니라서 이불 덮고 누워서 찬 발바닥을 비비며 오글오글 거리다 잠든다. 좋은 꿈 꾸고 싶다. 길고 좋은 꿈.
꽃을 샀다. 저 꽃은 작년에 신혼여행으로 갔던 호주의 숙소에서 처음 보았다. 정원 곳곳에 심어져 있었는데 강렬한 색상에 멀리서도 시선을 빼앗고 가까이 다가가면 꼭 목이 긴 화려한 새처럼 생겼다. 딱히 열대의 나라도 아니었는데, 휴양지라 이런 식물도 있나보다 했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가 이맘때였다. 꽃집에 갔는데 우연히 저 꽃을 보았고 여행지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라 더욱 반가웠다. 하지만 집에는 줄기가 길고 무거운 저 꽃을 꽂을 마땅한 화병이 없었다. 꽃집 옆에도 화병파는 곳은 많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중에 사진의 화병을 구입했을 땐 이미 저 꽃은 시장에 없었다. 그리고 종종 생각했다. 올해는 저 꽃을 사야지 하고. 지방이라 꽃집에 가도 온통 장미나 국화, 카네이션, 리..
어제는 몹시 맑았다. 따뜻한 햇살이 집안으로 들어오니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한시간 좀 안되게 집 앞 천변을 걸었다. 갈대인지 억새인지 천변에 자라는 풀들이 눈부셨고 바람이 불자 꽃씨 같은게 날려 공기중에서 반짝거리니 꼭 내리는 눈 같기도 했다. 오늘 노을도 아름답겠구나하고 기다렸다가 밤하늘을 찍었다. 특별한 일 없이 날씨가 아름다운 날이었다. 아파트에 작은 장터가 서는 날이었다. 사실 장터는 장사가 잘 안되어 작년에 비해 점포가 줄었고 지금은 야채와 생선을 파는 점포조차도 오지 않는다. 떡볶이등을 파는 분식집과 닭강정 미니트럭, 뻥튀기 아저씨, 과일가게만 고정적으로 오고, 나머지 점포는 왔다가 사라졌다가 다른 분이 다시 왔다가 한다. 아무튼 몇 안되는 곳 중 과일가게에서 ..
자려고 누웠다. 낮엔 시간을 낭비했지만 오후에 샤워하고 난 뒤 몸이 좀 따뜻해진 덕분인지 빨래도 두번 해서 널고 쓰레기도 양손 가득 두번이나 엘베를 오르내리며 내가버렸다. 김장김치 썰고 어묵탕 끓여서 밥먹었다. 결혼전엔 비건에 가깝게 먹고 다녔는데 결혼후엔 식탁에서 계란 없애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간보며 한점, 남은게 아까워서 한점 먹게 되고 어느샌가 혼자 먹을 때도 계란후라이를 부치고 있었다. 아직도 계란을 깨고 알끈을 걸러내고 하는 과정은 좀 스트레스 였지만, 그만큼 손쉽게 섭취할 단백질원이 없었다. 게다가 계란은 한알씩 팔지 않으니 유통기한내 섭취하려면 부지런히 먹어야 하는 아이러니 ㅠㅠ 그런데 한두달 전부턴 계란 먹을때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식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탄수화물 비중이 ..
미세먼지가 심하다. 일어나 창밖을 봤는데 뿌옇게 흐린 시야 때문에 처음엔 안개인가 했다가 어제 뉴스에서 미세먼지 이야기를 들은게 생각났다. 어제 밤에도 일년에 300번 정도 다짐하는 '내일부턴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보니 미세먼지 때문에 밖을 나가는 건 둘째고, 창을 열고 청소를 해도 될까 싶었다. 밥을 차려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후식까지 챙겨먹은 후에 앉아서 멍 좀 때리고 인터넷 쇼핑을 했다. 아빠가 주문해달라고 한 물건들과 뜨개질 실을 더 샀다. 그러고 나니 오후가 되었다. 집으로 볕이 조금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먼지가 심한 것 같아서 창을 열고 이불을 털고 청소기만 후딱 돌리고 다시 문을 닫았다. 오늘은 일주일에 하루 분리배출 하는 날이고, 약 한달간 월..
10월도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은데, 11월도 벌써 며칠 남지 않았다. 어서 시간감각을 되찾아야 하는데..
내일은 시댁에 김장하러 간다. 먼저 시집온 동서들은 그동안 김장때는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숙모님들 계시기도 하고 동서들은 임신-출산-육아를 겪고 있으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김장때 가서 도와드린다는게 조금 눈엣가시처럼 보일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매년 김장때마다 혼자 일하던 엄마 생각이 나서 굳이 가겠다고 했다. 낮엔 일하고 밤에 오셔서 배추 절이고 헹구고 물빼는걸 며칠씩 하던 엄마. 나는 어두운 밤 마당에 손전등을 들고 배추가 담긴 고무 다라이를 비추며 엄마 곁에 서있곤 했다. 우리 엄마는 아빠가 아픈 와중에도 김장은 하겠다는데, 정작 우리집 김장을 도울 수 있을진 모르겠다. 부모님 병원에 쫓아다니느라 남편을 혼자 두고 떠나있을 때가 많다. 착한 사람이라 내게 별말도 없고 오히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