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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ght Night
내일 아침에 서울 간다. 아빠 병실에 가져가려고 밥하고 반찬 몇가지 했다. 우리 가족은 진밥만 먹는데 병원밥은 푸석푸석해서 영 입에 안맞다. 그래서 밥을 했는데 진밥하려고 의식했더니 물이 너무 많았는지 완전 죽이 되어버렸다. 내일 아침에 밥을 한번 더 할지 그냥 어제 해서 얼려둔 밥 가져갈지 고민이다. 콩자반, 멸치볶음, 두부조림 세가지 했더니 기진맥진. 내가 먹는 거면 대충 했을텐데 부모님 드실거라 여러번 간보면서 했다. 한번에 동시에 하면 실패할까봐 하나씩. 아빠가 콩물 드시고 싶다고 해서 콩 불려서 삶아 갈았다. 고소하게 잘 됐는데 이건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는데 아쉽다. 나는 대학 들어가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하숙 일년하고 그뒤로 자취를 했다. 그때부터 엄마가 김치나 반찬을 해서 보내주셨는데..
아빠가 회복되는 걸 보고 내려왔어야 했는데. 지난주에 씨티랑 엠알아이 찍으며 열시간 금식에 물도 한모금 못 마시게 하고 조영제 맞고는 아빠가 몸이 너무 안좋아졌다. 입원 후에도 계속 열이 나고 5분만 걸어도 숨이 찬다고 해서 밖에 잠깐 나왔다가도 도저히 안되겠다며 손사레를 치고 먼저 병원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빠가 아팠어도 이렇게 병약해진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어지간하면 내 앞에선 약한 모습을 숨기는데, 얼마나 힘들고 아프면 이제 숨길 힘도 없으신가보다. 그게 금요일이었고, 그 날 저녁에 내려와서 주말에 남편과 바람쐬고 놀러 다니면서도 하나도 신이 나지 않았다. 토요일 밤엔 펑펑 울었고 지금도 울음이 그치질 않는다. 남편이고 고양이고 다 누구에게 맡겨버리고 아빠 곁에만 있고 싶다. 병원에선 치료를..
차타고 서울가는 중. 밤에 짐 싸느라고 늦게 잠든데다가, 꿈을 계속 꾸고 잠을 설쳐서 피곤하다. 그냥 버스에서 자려고 했는데 우등버스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불편해서 그냥 멍하니.. 사진은 5층 병동 휴게실. 조용하고 깨끗해서 노트북 펼쳐놓고 일기도 쓰고 그랬다. 병실 밖으로 나와 잠시 혼자 있는 시간에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아빠가 나중에 옮긴 병실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 롯데타워가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시골집 가서 동네산책할 때 어느집 담벼락에 크고 빛나는 다알리아가 주렁주렁 맺혔다. 다알리아가 원래 이렇게 넝쿨처럼 크는가? 아빠가 산책하자고 해서 따라나선 길. 시골집 주변에 강과 다리가 있다. 매년 할아버지 산소 갈 때 건너는 다리인데 ..
6시 반에 출발했다. 남편이 운전을 했다. 벌써 며칠 째 운전을 많이 해서 피곤할텐데 그래도 내가 하는 것보다는 남편이 운전하는게 모두가 더 편하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를까 했는데 서지 않고 그냥 서울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9시가 채 안되었던 것 같다. 월요일이고 남편은 휴가를 냈는데도 8시 반부터 외부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에 도착해 부모님께 먼저 로비로 가시라고 하고 우리는 지하로 가서 주차를 했다. 남편은 업무전화를 받아야 해서 나중에 올라간다고 해서 내가 먼저 올라갔다. 접수처로 갔더니 오늘따라 간센터 쪽은 사람이 적어 보였다. 우리 진료 예약 시간은 11시 10분이었는데 빨리 접수하면 진료를 빨리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검사결과는 오빠가 같이 들어야 할 것 같아서 기다렸다. 오빠는 ..
어제 잠들기 전, 엄마가 복층 계단 아래에 있는 오래된 생수통을 꺼냈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직접 담그신 매실 액기스라고 한다. 우리가 그 집에 이사를 왔을 때 넣어둔 것으로 최소한 25년 이상 된 것이다. 그 정도 묵혔으면 충분하다 생각하신 것인지, 어쩌다 얘기가 나와 기억이 나신 것인지 엄마의 속은 모르겠지만 그걸 꺼내자고 하셨다. 복층 계단 아래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가 있는데 가장 깊은 곳, 다 큰 우리들은 허리를 굽혀도 들어가기 힘든 구석에 생수통이 있었다. 무거워서 남편에게 꺼내달라고 했다. 입구는 비닐로 묶어져 있고 하얗게 먼지가 쌓였으며, 겉에서 보기엔 시커먼 액체가 들었는데 움직일 때 찰랑거리는 느낌이 들어 액기스가 아니고 포도주가 아닌가 했다. 사실 안쪽엔 큰 생수통이 두개가 들었..
나는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부모님은 아침을 챙겨 드셨다. 남편이 오기로 한 날이다. 전날 시부모님이 계신 통영에 도착했다고 했다. 아침 일찍 올 줄 알았는데 점심쯤 온다고 연락이 왔다. 엄마는 나가서 풀을 베고 어제 잎을 따서 삶아 말린 피마자 잎을 살펴보셨다. 피마자(아주까리)잎은 그렇게 삶아서 말려두었다가 정월대보름에 나물로 먹는다고 한다. 키가 제법 크고 줄기가 굵게 자라 몰랐는데 일년생이라고 한다. 나중에 뾰족뾰족한 가시가 달린 열매가 마르고 나면 그 안에 있는 씨앗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늘 저녁에는 다시 본가로 가야 했다. 그래서 또 비워질 시골집의 텃밭을 정리했다. 엄마가 배추 씨앗을 잔뜩 뿌려 빼곡하게 자란 어린 모종들을 솎아 텃밭에 자리를 만들어 옮겨 심었다. 엄마가 옮겨 심고 아빠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부모님이 시골집으로 이동할 준비를 거의 다 해놓으셨다. 시골집은 재작년에 부모님이 본가에서 차로 한시간이 안걸리는 거리의 시골에 구입하신, 텃밭 마당이 딸린 작은 집이다. 부모님도 은퇴를 생각하시며 부모님 고향 근처의 이곳저곳을 많이 알아보셨다고 한다. 마음에 꼭 드는 집이 나타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 집을 발견하고는 고민 않고 결정하셨다고 했다. 조립식의 작은 집과 텃밭은 한동안 부모님의 소일거리이자, 취미생활이자, 몰두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잡초를 베고 작은 과일나무들을 심고 자갈을 골라낸 땅은 텃밭을 만들어 토마토, 고추, 가지, 호박, 딸기 등을 심었다. 계절에 따라 상추, 배추, 무 씨앗도 뿌렸다. 주중엔 각자 일을 하러 가시고 주말이나 일이 없을 때는 그곳에서 ..
어제 저녁, 불과 5분 사이에 색이 완전히 달라졌다.집에서 겨우 빠져나와 건너편 스타벅스에 왔다. 부모님은 내일 있을 검사 때문에 오후에 서울로 출발하셨다. 나는 내일 새벽에 차를 타고 서울에 갈 예정이다. 지난 주말에는 H와 함께 부모님의 시골집에 놀러갔었다. 여름에 바삐 수리를 했던 시골집은 미처 다 못 끝낸 부분들이 많았는데, 아빠가 아프시고는 힘쓰는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H가 가서 삽질도 하고 흙도 나르고 고생을 많이 했다. 개천절엔 대전으로 돌아와서 백화점을 갔다. H의 양복도 한벌 사고 가을에 입을 내 옷도 샀다. 쇼핑 하는 것도 예전같지 않고 그냥 유니클로 가서 체크무늬 셔츠와 가벼운 니트 하나씩 샀다. 작년 가을에 샀던 옷이 하나도 맞지 않아 슬프다. 추석부터 아빠가 아프신 걸 안..
일기가 밀려서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지난주 수요일 글에 이어서.. 본관에 도착하니 안양에 사시는 이모가 도착해 계셨다. 엄마는 이모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리셨다. 붐비는 본관 로비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시라 하시고 나는 약국에 다녀온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생각해보니 아빠랑 함께 다녀올 걸 엄마와 이모가 얘기하는 동안 아빠를 곁에 둔게 지금은 마음에 걸린다. 나도 아직 울음 옆에 가만히 앉아 있을만큼 강하진 못하다. 우리 이모부는 몇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지금 아빠가 입원한 병원에 1년간 입원해 계셨고 이모가 그 기간동안 병원에 계속 같이 계셨다. 그게 벌써 9년 전이라고 한다. 이모부는 척추에 전이가 되어 걷지 못하는 상태로 병원에 들어오셨고, 긍정적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분이라 병원에서도 ..
아빠가 오늘 1차 색전술을 하셨다. 나는 어제 오빠네서 자고 오늘 아침에 병원에 왔는데 9시가 되기 전 도착하니 벌써 색전술 들어갈 준비를 마치고 계셨고 금방 이동하여 9시에 혈관조영실로 이동하셨다. 수술도 아니고 '시술'이라고 부르지만 환자복에서 수술복으로 갈아 입으시고 링겔을 달고 가만히 누으셔서 침대째 이동하여 문 너머로 실려 들어가는 아빠를 보는 것은 무섭고 슬펐다. 한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아빠 병실에 다시 올라와서 엄마와 기다렸다. 침대가 빠져나간 공간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도 소곤거리며 기다리고 있으니 딱 한시간 걸려 아빠가 들어오셨다. 침대가 제자리를 잡고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체온을 재고 주의사항 등을 알려주고 나가셨다. 아빠가 덥다고 하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