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의 순간들 (287)
Fright Night
데이지 화분은 소리 없이 티도 안내고 꽃대를 계속 올리고 있다. 며칠전에 가위를 들고 오래된 꽃대 3개를 잘랐다. 계속 꽃을 보려면 더 잘라줘야 하는데 보기에 여전히 싱그러워 보이니 쉽게 가위질을 못하겠다. 작은 포트 3개를 모아 심으면서 너무 붙여서 심은 탓인지 화분이 비좁아 보이기도 한다. 집에 데려오니 짙은 핑크색이던 꽃 색이 점점 옅어지고 새로 올라오는 꽃대는 더 색이 빠져서 거의 하얀 꽃이 많아졌다. 핫핑크라 부담되었는데 색이 빠지니 더 이쁜 것 같다.최근 한반도 주위로 미국과 중국 군대가 모이고 있다며 전쟁나는거 아니냐는 불안한 소리에 H는 쿨하게도 "선거철이 됐네"라고 했지만, 나는 조용히 피난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작년에 지진 났을 때 아파트가 꿀렁~ 하고 흔들렸던 경험 이후로, 요즘도..
월요일은 H의 휴가였다. 지난주에 서울 본사를 다녀오더니 상급자들과 면담을 했다며 무슨 얘길 했는지는 말하지 않고(대충 짐작만 한다), 월요일은 휴가를 썼다고 하길래 사실 무슨 일이 있는건가 조마조마했다. 어차피 휴가를 써도 집에서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여러 전화를 받고 사무실과 통화하고 그러다보니 맘놓고 멀리 여행을 가거나 하긴 어렵다. 운전하고 가는 중에도 계속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집에 있기도 뭐해서 간단히 아침을 차려먹고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휴양림에 다녀왔다. 업무전화가 잠깐 줄어드는 점심시간인 12시에 출발했다 ㅎㅎㅎ.산은 이제야 겨우 봄이 온 듯 했다. 휴양림 아래쪽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메타세콰이아 숲이 있었는데, 고개를 한껏 젖혀야 꼭대기가 보이는 키 큰 나..
비온 뒤 맑은 주말이라 다들 벚꽃구경 가는지 차가 매우 밀렸다. 우리도 그 중 하나였지만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 근처가 마침 장날이라 시장구경을 갔다. 봄이라 꽃을 파는 분들도 많았는데 마침 그동안 갖고 싶어 눈여겨보던 '수채화 고무나무'를 데려왔다. 사진 왼쪽 아래에 있는, 이름이 너무 잘 어울린다. 화분 두개가 있었는데 둘다 가지가 굵고 아래쪽 목질화도 되어 있고 쭉 뻗은게 좋았다. 집에 와서 보니 플라스틱 화분에 오래 있었는지 뿌리가 밖으로 다 나와있다. 인터넷으로 예쁜 화분 사려는데 언제 주문하고 배송 받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천변에 벚꽃 만개한 거 구경하다가 차 한대 겨우 지나가는 외길에 앞뒤로 차가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한참을 갇혀있었다. 다들 반쯤 포기하고 차에서 내려 사진찍고 하길래 ..
3월 초에 급하게 다녀온 제주. 이래저래 둘 다 우울하기 짝이 없었던 때였다. 둘 중 하나가 제주도 가고 싶다고 얘길 꺼냈고, 마침 또 비행기도 있어서 바로 떠났다. 성수기가 아닌 덕에 숙소는 육지 어느 펜션들 보다도 훨씬 저렴했고, 무엇보다 여행만 가면 날씨가 흐린 징크스를 깨고 날씨가 너무나 좋았다! 카페 요요무문. 어중간한 시간에 가서 고양이들은 못 만났지만 라떼에 고양이를 그려주셨다!
오늘 비 온다는 소식을 어제부터 기다렸다. 비가 온지 꽤 오래 된 것 같고 공기는 너무 건조했다. 빗소리에 도시의 다른 소음들이 묻히고, 먼지와 흙냄새가 나다가 젖은 비 냄새가 나는 것이 좋다. 밖으로 나가긴 좀 싫은데, 빗방울이 들어오지 않는 안락한 곳에서 그렇게 비를 즐기면 포근한 느낌이 든다. 이 습성은 조금 얄밉기도 하다. 대학생때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개인 빵집이었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식빵이 잘 팔린다고, 비가 오면 식빵을 더 구워냈다. 평소보다 더 많이 진열해도 저녁 즈음이면 동이 났다. 어두워진 뒤에 젖은 우산을 접으며 빵집 문을 들어서는 사람들은 식빵진열대가 텅 빈 것을 보고도 식빵 없냐고 묻고 다시 등을 돌렸다. 우산을 펼치는 사람들의 등은 조금씩 젖어 있었..
천안에 뚜쥬르 라는 유명한 빵집이 있다. 처음 이 빵집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구나 '뚜레쥬르 따라서 지은 이름인가'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럴만 하다. 하지만 오히려 뚜레쥬르가 이 뚜쥬르 빵집으로부터 허락을 구했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천안에서는 매우 유명하고 큰 빵집이다. (뚜쥬르와 뚜레쥬르 관련해서는, 양쪽이 이름을 두고 소송을 해서 뚜쥬르가 이겼고 그래서 천안에는 뚜레쥬르가 없다는 둥 여러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천안에도 뚜레쥬르가 몇군데 있긴 한데 존재감이 별로인듯 하다)H가 천안에서 근무한 몇년동안 참 자주 갔었다. 지금은 어쩌다 천안을 지나칠 일이 생기면 시내쪽 본점 말고 빵돌가마 지점을 들리곤 한다. 그런데 여기는 빵값이 왠만한 서울의 베이커리만큼 비싸서, 마음껏 빵 고르기가 망설여지..
지난 토요일 정말로 오랜만에 하늘이 맑았고 노을도 붉었다. 미세먼지 정말 나쁘다 ㅜㅜ 얼마만의 해질녘인지. 옥탑에 살때는 화분이 제법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요상한 일인데, 집에서 1분거리에 꽃집이 두개나 있었고, 걸어서 15분 또는 마을버스로 5분 거리에는 꽤 큰 화원이 있어서 일년 내내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식물들을 판매했다. 이맘때면 생김새가 모두 다른 색색의 꽃들이 화원 앞 인도를 빼곡히 채웠는데, 그 사이에 난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도 화원을 탓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꽃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꽤 단골이 되었다. 항상 현금결제였기 때문에 덤으로 흙을 받기도 했고 팔리고 한두개 남은 꽃화분도 받았다. 지금까지도 그 화원처럼 다양한 야생화를 많이 판매하는 곳을 보지 못했..
H와 서해쪽으로 놀러갔다. 남쪽 바닷가가 고향인 H는 해산물을 너무 좋아하는데, 제철의 신선한 식재료를 사려면 산지로 나가야해서 예전에는 종종 그나마 가까운 서해쪽으로 가던 곳이 있다. 차를 타고 왕복 3시간 거리, 주말에 차가 밀리면 4시간여 걸리니, 차타는 걸 싫어하고 해산물도 그닥인 나는 사실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아니다. 다만 H가 '갈래?'하고 물었을 때 다른 말 없이 '그래'하고 따라나서는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주말이고 날씨도 좋아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오랜만에 갔더니 주변 상권이 더 넓어져서 길가에 줄지어 있던 가게 몇개는 큰 건물로 옮겨졌다. 바닷가 바로 앞 공원에는 사람들이 갈매기에게 새우깡 던져주느라 씨끄러웠다. 머리 바로 위까지 날아와 ..
자고로 주말엔 늦잠자고 해가 중천일 때 겨우 눈을 뜨고 잠에 취한 채로 뒤척거리면서 내 옆에 인간이든 고양이든 다른 생명체가 함께 누워 있는 것에 행복해지고 그런 것이거늘, H는 대단히 아침형인데 주말엔 더 빠른 새벽형이 되고 냥이들은 침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일어나면 항상 혼자만 게으름을 피운 사람이 된다. 오늘은 무생채를 하고 두부를 구워 아침밥까지 차려먹고 나가서 공원 한바퀴 돌며 포켓몬 잡았다. 주말 아침 9시경에 공원을 걷게 만들다니 대단한 게임이다. 그 후 화원이 많은 곳에 가서 토분을 2개 사고 꽃도 조금 사서 돌아왔다. 점심은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샀다. 와플 후라이가 새로 나왔고 기존 후렌치 후라이에서 무료로 변경이 되서 하나만 바꿔봤는데, 바삭하고 특이하긴 한데 늙은이 입맛인 ..
오늘은 날씨가 참 포근하다. 베란다에 거실에 있으면 잘 모르겠는데 창을 하나 열고 베란다만 나가도 느껴지는 온도가 다르다.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아 망설이다가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집 앞 하천을 한바퀴 돌고 카페에 오니 가벼운 옷차림이었는데도 제법 땀이 나고 더워서 아이스커피를 시켰고 역시나 몇모금 먹자마자 그냥 따뜻한 걸로 시킬 걸 후회. 몸이 식으면서 춥다. 카페인 좀 줄여버려고 디카페인 커피로 달랬더니 없단다. 여기 스타벅스 맞나요..5월 징검다리 연휴에는 또 강원도를 가기로 했다. 사실 여기서 차를 몰고 가기에는 훌쩍 떠날만한 거리도 아니고 조금만 성수기 느낌이면 숙박료가 껑충 뛰어오르는 곳이라 고민을 많이 했는데 H가 굳이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