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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ght Night
여행은 좋았지만 내향형 인간은 역시 혼자 있는게 최고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에너지를 쓰게 되니 몇일씩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억지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꼭 가질 것.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에 사람들은 없어지고 고립될텐데 그럴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갖게되고 더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하루빨리 고립되어 버리고 싶다. 월요일엔 밀린 일기를 써야겠다.
친구들과 여행을 왔다. 어제 저녁에 도착했다. 온천이 있는 곳이라 친구들은 아침을 먹고 온천을 하러 갔고 나는 방에 혼자 누워 휴대폰을 하다가 잠깐 졸다가 깼다. 바람도 쐴겸 나오는 건 좋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 너무 괴롭다. 고작 지난주가 설이었으니 차를 많이 탄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며칠전에도 서울 다녀오느라 기차를 또 탔고 그래서 더 그러하다. 멀리 나오면 하루 혹은 반나절이라도 이동하면서 쌓인 피로를 풀어야 하는 몸뚱아리. 친구들은 온천물이 좋다고 자꾸 함께 가자고 하는데 나는 온천이 싫다. 대신 혼자 방에 있으니 이쪽이 더 편안하다.
오늘은 오전에 운전해서 시내 중심에 있는 마트에 다녀왔다. H가 동승하지 않고 혼자 운전해서 목적한 곳에 도착하고 주차를 하고 볼일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는 처음이었다. 아직 운전이 미숙한 내가 굳이 시내 중심에 있는 그 마트를 가려고 한 이유는, 그곳에 주차를 하면 옆 건물에 있는 꽃 도매상가 건물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튤립을 한단 샀고 마트로 들어가 간단하게 장을 보고 돌아왔다. 작은 성공을 거둬 기분이 무척 좋았다. 프라하 사진을 보니 생각이 난다.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들른 도시 중에서 프라하가 가장 좋았다. 그때 묵은 숙소는 외곽에 있었는데 한국인 사장님이 지도를 펼쳐놓고 시내로 걸어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이 길이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했었다. 사실 프라하는 ..
아침에 일어나니 밖에 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새벽에 제법 눈이 내린 모양이다. 나는 신이 났지만 H는 출근하기 싫어서 울상이 되었다. 날씨도 너무 춥고 대자연까지 와서 아침에 게으르게 잠을 잤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렸는데 꿈에서 눌린건지 깼다가 다시 잠들다가 하면서 눌린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가위에 눌리면 온 몸이 무거운 것에 짓눌리는 것 같고 팔다리를 꼼짝도 하지 못하고 숨을 못 쉬어 이러다 죽겠구나 싶게 고통스럽다. H가 함께 있을때면 내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듣고 흔들어 깨워주는데 가끔은 깨어나서도 몽롱하고 숨이 가쁘다. 수면장애가 있는게 아닐까 추측만 하고 있다. 오늘은 한시간 반 남짓 자면서 수차례 깼었는데 마지막에 제대로 깨어났을 땐 식은땀이 흘렀다. 샤워를 하고 로션만 바르고 옷을..
오늘은 추웠다. 이불 속에 누워 휴대폰을 꼼지락거리며 사진첩의 사진들을 정리했다. 나의 눈엔 다르지만 남의 눈엔 같아 보이는 냥이들 사진들을 보다가 작년 봄과 여름에 옥탑에서 지냈던 시절을 보았다. 햇볕 아래에서 행복해 보이는 고양이들. 이곳으로 이사왔을 땐 이미 가을이었고 더이상 짐이 늘어나는게 싫었다. 그래서 베란다를 두고도 화분을 더이상 늘리지 않았다. 서향인데다 외풍이 심해 겨우내 베란다는 꽁꽁 얼듯이 추웠던 것도 한몫했다. 지난주에 가드닝 카페 갔을 때도 큰 화분들에 제대로 꽂혔었는데 아무래도 봄이 오면 화분을 들이고 꽃이든 상추든 뭐라도 심어야 겠다. 여긴 날아드는 나비도 씨끄러울만치 지저귀는 새소리도 없겠지만 나와 고양이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즐거워지겠지. 오늘 낮에도 혼자 차를 가지고 나갔..
느즈막히 아침을 먹었다. 지난주에 사다놓은 미니 파운드케이크 얼려둔 걸 꺼내 커피랑 아침으로 먹었다. 다음주는 진짜 다이어트라며 냉동고에 얼려놓은 빵들을 내 몸속에다 처리하고 있다. 책 빌리러 가는 도서관이 있는데 집에서 걸어가면 삼십분남짓 걸리고 버스나 다른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운전하면 꼭 차를 가지고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딱 봐도 주차장이 협소해서 혼자서 가는건 걱정이 되어 오늘 H를 동승해서 가보았다. 주말이라 그나마 차가 적었는데도 거긴 혼자 운전으로는 못 가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들어가는 길도 차가 한대 겨우 지나갈 정도라 나같은 초보운전은 반대편에서 차가 나오면 어찌할바 모르고 오도가도 못하기 딱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더라도 차 돌려서 나올 공간도 너무 적고. 두번째로 운전해서 가보고 싶은..
어제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쳤다. 안개와 습도 때문에 반쯤 물 속에 잠긴 것 같은 아침을 맞았다. 집 바로 앞에 있는 하천때문에 이런 날에는 더욱 습한것 같다. H가 아침밥도 차려주고 후식으로 프렌치토스트도 구워주고 커피도 내려주었다. 출근 안하는 주말에는 기분이 좋아서 이런 내 부탁을 곧잘 들어주는 편이다. 설거지도 다 해줘서 나는 샤워를 간단히 하고 외출준비를 했다. 차를 운전해서 집 근처 코스트코에 갔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인데 이파트 단지를 빠져나오기도 전에 뒤의 차들이 계속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렸다. 다행인 것은 내가 운전이 너무 서툴러서 그들이 경적을 얼마나 울리든 아주 천천히 간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나오면 또 바로 앞이 학교라 어린이 보호구역인데 왜 그렇게 빨리 달리는..
어제는 창문을 열어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온다. 사람들은 비 온 뒤에 날씨가 다시 추워질거라고 한다. 하루에 두끼를 먹고 간식을 즐기던 생활을 하다가 명절에 계속 세끼를 먹었더니 살이 쪘다. 채식한다고 까다롭게 보일까봐 밥을 더 맛있게 먹는 척하고 밥그릇을 매번 싹싹 비웠더니 그런가보다. 안그래도 결혼하고 나서 생활패턴이 바뀌어 살이 쪘는데 걱정이다. 혼자 지낼 땐 귀찮다고 요거트나 과일로 간단히 먹을때가 많았는데 H는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고 대신 군것질을 전혀 안한다. 퇴근하고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다보면 저녁 8시를 넘기 일쑤고 그때쯤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밤늦게 많이 먹어버린다. 하루빨리 패턴을 바꿔야겠다. 최고로 뚱뚱했던 시절의 몸무게를 다시 찍을까봐 ..
토요일 11시쯤에 시골 시할아버지댁으로 출발했다. 설날 당일에 제사를 하고 점심때쯤 우리집으로 갔고 하룻밤 자고 화요일에 점심 먹고 출발해서 저녁때 집으로 돌아왔다. 3박4일 이었는데 고양이들이 다행히 큰 말썽이나 사고 없이 잘 있어 주었다. 이번엔 명절이 길어서 오빠 부부가 키우는 고양이를 데리고 왔는데 명절의 유일한 낙이자 행복이었다. 어제는 H와 나가서 바람쐬고 들어왔다. 마트도 가고 세차도 하려고 했는데 둘다 피로가 쌓여 산책 좀 하고 밥을 먹고 나니 어찌나 졸리운지 그냥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풀지도 않은 채였던 캐리어를 열어 기름냄새 밴 옷들을 꺼냈다. 13kg 세탁기인데도 두번 돌릴만큼 빨래가 많았다. 저녁은 제사상에 올렸던 문어다리를 엄마가 줬는데 그걸 썰어서 매콤한 낙지볶음 비슷하게..
시댁에 왔다. 제사도 명절도 시할아버지댁에서 다 보내기 때문에 지금 여긴 아주 시골에 있는 곳이다. 모든게 낡고 때타고 좀 지저분하다. 할아버지 혼자 사시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시골집 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불편한건 없다. 뜨거운 물도 나오고 필요한 세면도구는 다 챙겼고 옷도 여벌로 여러벌 챙겼다. 어른들 인사용 깔끔한 옷, 전 부치고 일할때 입을 옷, 잠잘때 입을 옷을 위아래 세트로 챙기니 한짐이었다ㅜ. 고작 며칠 머무는 거니 까다롭게 굴 필요는 없다. 다만 잠자리가 바뀌면 잘 못자기 때문에 열시부터 자려고 누웠어도 잠이 들지 않는다. 베개에 한장 깔고 잘 손수건이나 수건을 챙긴다는 걸 깜박했기 때문이다. 이 베개의 위생상태가 걱정이 된다ㅠㅠ 옷이라도 하나 꺼내서 깔고 자야겠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