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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ght Night
이 도시에서 의미를 찾자면 몇가지는 늘어놓을 수 있다. 결혼을 했고 동거인이 생겼고, 태어난 고향, 서울에서의 10년, 이후에 머무르는 세번째 도시. 운전을 배웠고 직장을 구했으며, 그 직장을 금방 그만두었다. 나는 이곳에서 친구를 만들지도 않고 좋아하는 카페를 찾아내거나 이 도시의 날씨, 사람들, 지리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이곳은 내게 스쳐지나가는 도시일 뿐이다. 그렇게 그어버린 선이 높은 담장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담장을 뛰어넘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 담장이 나를 외부로부터 지켜주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마 8월까지는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일을 다시 구하긴 해야 하는데 망설이고 있는 부분이 있다. 지금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고 배워야 할지 아니면..
보정을 안해도 이쁘지만 보정하니 더 이쁜 꽃. 하늘색 옥시 꽃은 이틀 지나니 시들해지기 시작해서 과감히 버리고 장미만 다시 꽂았다. 열대의 꽃이나, 열대를 생각나게 하는 화려한 색의 꽃을 사고 싶었는데 ㅎㅎㅎㅎ 나는 그런 선택의 자유가 없는 도시에 살고 있었지(…) 그래도 장미향이 좋아서 코 박고 자꾸 맡게 된다. 새콤달콤한 과일향이 난다. 폐허의 도시는 클라이막스까지 읽었고 잠시 멈췄다. 좋은 책은 마지막 부분을 밤에 읽어야 더 좋다. 촌스럽지만 괜히 그렇다. 오늘밤엔 읽어야지. 그런데 읽다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었다. 나의 뇌가 내용을 싸그리 잊은 덕분에 스토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놀라움 ㅎㅎ
날씨가 개었다. 느즈막히 일어났는데 집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달랐다. 미루던 빨래도 하고 걸레질도 하고 창문을 열어놓으니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와서 고양이들도 기분 좋게 누워 잤다. 아침엔 베이글과 커피를 먹었는데 청소를 하고 나니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숨이 차고 어질어질 했다. 정말 저질체력이다 ㅠㅠ 어찌어찌 샤워까지 하고 나와서 식탁위에 올려져 있던 과자를 뜯어서 마구 집어 먹었다. 그러고도 자꾸 뭐가 먹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져서 빨리 먹을 수 있을만한걸 찾다가 비빔면이 있어서 그 와중에 오이까지 채썰어 넣고, 냉장고에 식은 밥이 조금 남아 있는게 있어서 그것까지 아주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러고 거실에 뻗어 있으니 나도 내가 한심해서 헛웃음이 났다.책을 좀 읽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이십분만에..
서울에서 함께 일했던 언니가 대전역 들를 일이 있다고 해서 역에서 잠깐 보기로 했다. 막상 나가려니 씻고 머리 말리고 눈썹 다듬고 화장하고 등등이 너무 귀찮았다. 커피 마실 생각으로 챙겨 나왔는데 오전까지 흐렸던 하늘이 점차 개면서 끔찍하게 더웠다. 지하철역까지 십오분 걸어갈 자신이 없어 그냥 택시를 탔다. 담배냄새가 자욱한 택시... 약속 만나러 나가는데 담배 쩐내를 풍기며 사람을 만나겠구나ㅠㅠ 아침엔 인터넷으로 종이인형놀이와 종이접기 책을 주문했다. 소일거리 힐링타임이라도 가질 요량으로. 어렸을 때 진짜 좋아했어서 기대중.
오늘은 하루종일 비 내리는 것, 그리고 집 앞의 하천이 불어나 산책로가 점점 잠기는 것을 구경했다. 비는 쏟아붓듯 내리다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쏟아져 내리길 반복했다. 일찌감치 외출은 접고 세탁기를 돌리고 작은 방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옛날엔 마음먹고 집을 싹 청소하는 걸 좋아했는데 아직 체력이 없고 하루종일 피곤한데다 심리적으로도 무기력한 상태인지 며칠에 걸쳐 청소할 구역을 정해 조금씩 하고 있다. 그리고 빗소리가 들리면 창가로 가 시야가 하얗게 흐려지는 걸 구경하고 낮잠자는 고양이들에게 "비온다, 저것 봐"하고 혼잣말을 하고 다시 하던 일을 했다. 저녁은 콩나물국을 끓이고 오이를 하나 썰여 오이무침을 했다. H가 좋아하는 진미채볶음도 했다. 짜게 하니 뭐든 실패는 하지 않는데 다시 싱..
오늘은 H가 모임이 있어 놀러갔고 내일 돌아온다. 나는 아침에 깨어 H를 배웅하고 멍하니 티비를 보며 빵과 우유를 먹었다. 열두시쯤 다시 잠이 들었다가 세시가 넘어 깼다. 전화가 안왔다면 아마 저녁까지 계속 잤을지도 모른다. 이후의 시간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보냈다. 나가서 꽃도 사고 네일아트도 받고 번화가에 나가서 사람구경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냥 다 귀찮았다. 덥고 습했고 틀어박히고 싶었나보다. 저녁도 라면을 끓여 먹었고 배가 고파지면 사다둔 빵을 먹었다. 와중에 비타민 섭취한다고 오렌지와 산딸기를 갈아 쥬스도 마셨다. 출근하는 동안에는 냉장고 과일이 줄지를 않았는데 집에서 뒹굴거리니 조금씩 줄어든다. 마르고 상한 과일이 많아 속상하다. H의 8월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려고 항공권을 좀 알아보았다. ..
비가 온다. 비로소 장마같다. 서울에서 지냈던 십년간은 하루도 빗소리를 즐기지 못했다. 반지하방은 침수되고 물이 새서 벽지가 젖고 곰팡이가 피었다. 떠나기 전에 살았던 옥탑방은 아늑했지만 집주인과 갈등이 생긴 이후로는 그 집에서 편히 지낸 적이 없었다. 아마 빗소리는 내게 사색에 잠기기보다 심리적인 불안을 유발시킬 뿐이었다. 막막한 미래나 힘들었던 시절의 괴로움을 상기시키는. 조금 우울하다. 혼자 있고 싶고 낯선 곳에 있고 싶다. 이곳에 있기가 싫다. 우리집 창가에서 사무실 건물의 불빛이 보이는게,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내가 남긴 업무을 처리하고 있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든다. 나는 영웅적인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뜻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도망쳤을 뿐인 결과지만 내게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
5월,6월 두달간은 밖으로 나가 뭔갈 할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6월 말쯤 되어 사무실로 부터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을 때 남편과 부자 피자를 먹으러 갔다. 이 황량한 도시의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이었다. 우연찮게 발견했을 때는 영업시간이 끝난 뒤라 구경도 못했고 벼르고 있다가 어느 날 저녁 일을 다 내팽겨치고 갔을 때 였다. 시간이 8시도 되기 전이었는데 4종류의 피자 중에 마르게리따는 솔드아웃이고 나머지 3종류를 한조각씩 샀다. 내가 산 이후로 피자는 한종류만 남게 되었다. 한조각이 6~7천원 하는 가격인데 이태리피자 보다는 미국피자 느낌인데 크기는 미국피자 크기는 아니다 ㅋㅋ 아주 짜서 먹고 나니 목이 매우 말랐다. 이런건 맥주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테이크아웃 해오니 집에서는 피자가 많이 식은 채..
뭘 할지 결정할 수 있는 하루. 아침에 깨어 의무적으로 일을 하러 가고 점심을 먹고 또 일을 하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닌, 오늘은 뭘 할지 내일은 뭘 할지 결정할 수 있는 하루. 사무실을 그만두었고 6월의 마지막날은 근무를 안했지만 월급은 들어왔다. 그냥 짐을 챙겨 한마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 나도, 월급을 문제없이 입금한 사무실 측도, 서로간에 더이상의 대화나 협의는 불필요하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사무실에서 대표,실장님과 친분이 있던 현장직분이 전화가 왔었다. 받고 싶지 않아서 받지 않았더니 오늘 오전에 카톡이 와서 서운하다며 밥이나 한끼 먹자고 했다. 나는 고민하다 밥 생각은 없고 커피나 같이 먹자고 했다. 밥을 먹을 만큼이나 할 얘기가 많진 않고 그냥 잠깐 얘기나 나누자는 생각. 일을 그만둔 가장..
오늘 일을 그만 두었다. 며칠간 고심하던 차였다. 8시쯤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사무실에 가져다놓은 내 집기들을 챙겼다. 이것저것 많이 가져간듯 했는데 가방에 쓸어담으니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실장님에게 일이 너무 많고 힘들다며 오늘까지만 일하겠다고 했다. 큰소리 뻥뻥치며 호령하던 실장님의 눈빛이 흔들리고 얼굴이 붉어지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뭐든 내키는대로 결정해버리는 내가, 그나마 몇일을 질질 끌며 고민했던 이유였다. 함께 일하기 편한 타입은 아니지만 그 속에 인정이 있다는 점. 하지만 적은 임금에 나쁜 환경에 말도 못할 노동량을 견디고 일하는 것이 나를 위한게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가족을 위해 수입이 필요하다고 해도, 정작 집에 돌아가 가족과 밥을 먹거나 얘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